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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두교주 May 25. 2023

한쪽 말만 듣고 하는 재판 - 片言可以绝狱者

제12편 안연 (第十二篇 顏淵) - 12

  최근 법원으로부터 재미있는 통지를 받았다. ‘무변론 판결 선고’를 한다는 것이다. 내용을 알아보니 피고가 뺀질거리고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자, 재판부가 보낸 것이다. 이 경우 피고가 답변서(또는 준비서면)를 제출하면 무변론 판결 선고는 바로 취소된다. 그렇지 않다면 한쪽만의 주장을 살펴 판결을 선고할 수 있다.    

  

  민사소송을 제기한 원고가 공판기일에 여러 번 참석하지 않으면 ‘쌍불’로 처리해 소송이 각하된다. 반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는데 피고가 소장을 받지 않고 도망 다니면 최종적으로 ‘공시 송달’을 보내고 원고의 주장만 살펴 판결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한쪽 말만 듣고 재판을 하면 그것이 정당할까? 『논어』에서는 잘못이라는 말이 없다. 심지어 그것을 잘하는 사람이 나온다. 그것도 공자가 그렇게 인정했다고 한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한쪽의 말만 듣고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자로()가 아닐까?”     


  자로(子路)는 지키지 않고 묵혀둔 약속이 없었다.     


  공자가 인정한 일이니, 후대 ‘공자 귀신’을 팔아먹는 사람들은 당연히 인정에 칭송을 더했다.     


  북경대 교수 리링(李零)은, “한쪽 편의 말을 듣는 것은 편언(片言) 혹은 단사(單辭)라고 하고, 재판하는 것을 절옥(折獄) 혹은 제옥(制獄)이라고 한다. 자로를 한 문장에서는 이름(由)으로, 한 문장에서는 자(자로)로 불렀으니, 이 구절은 사실 별개의 두 문장이다” 라며 폼을 있는 대로 잡은 후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자로는 사람 됨됨이나 말투가 시원시원했다. 그는 소송사건을 판결하는 데도 대단히 과단성이 있었으며, 약속한 것은 결코 질질 끄는 법이 없었다.      


  이천 년 전 위대한 역사서 『사기』를 지은 사마천도 그렇게 생각했다.③ 그뿐만 아니라, 천 년 전 『논어집주』를 지은 주자도 다르지 않았다. (주자는 ‘한쪽 말’을 ‘반 마디 말’로 해석했다)④ 주자는 자로가 “충신(忠信)하고 밝고 결단하였다”⑤라고 기렸다.    

  

  따라서 공자 귀신 팔이 후학들이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튀고 나대기 좋아하는 도올 김용옥도 다르지 않다. (그는 ‘한쪽 말’을 ‘편린의 진실된 말’⑤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한쪽 말만 듣고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발상은 상식적으로 옳지 않다. 판단하는 사람이 아무리 훌륭하지 않아,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드는 신통력이 있어도 불가능한 일이다.     


  만일 누군가 그런 재판을 한다면 충신 하다, 과단성 있다, 시원시원하다고 칭찬할 일이 아니라 '사법 농단'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 법은 원칙적으로 만인 앞에 공정해야 법이다. 비록 가끔 그렇지 않을 때가 있더라도!     



대문 그림 : 구글에 '사법 농단'을 검색한 결과중 하나. (출처, https://zrr.kr/rngz. 2023.5.25.)


① 리링(李零) 지음, 김갑수 옮김『집 잃은 개, 丧家狗 2』(주)글 항아리. 경기, 파주. 2019. p.697. 원문은 다음과 같다. 子曰, 片言可以折獄者, 其由也與, 子路無宿諾.     


② 위의 책 p. 698.     


③ 사마천 원저, 배인, 사마정, 장수절 주석 『삼가주 사기·열전 1』 글 책방 편집. 서울. 2023. p.116. (연구용 비매품) 또는 (漢) 司馬遷 撰. 陳曦, 王珏, 王晓东, 周旻 譯 『史記(全五冊』 在中华书局。 2019. 北京。 2019. p.2787.      


④ 成百曉 譯註『顯吐完譯 論語集註』傳統文化硏究會. 서울. 1991. p.241.     


⑤ 위의 책 pp.241-242. 원문은 다음과 같다. 子路忠信明決이라.     


⑥ 도올 김용옥 지음『논어한글역주 3』 통나무. 서울. 2019.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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