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연설에서 두 가지가 가장 인상 깊었다. 첫째, 그는 미국을 칭찬했다. 외교적 수사를 섞어 아부하는 공허한 말장난이 아닌 사실에 근거해, 잘한 것을 잘했다고 했고 고마운 것을 고맙다고 했다. 이런 칭찬은 못난 사람이 잘난 사람에게는 할 수 없다.
둘째는 힘이나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를 자세히 언급했다. 힘이 있으면 돈을 빼앗을 수 있고, 돈이 많으면 힘을 살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가치인 ‘창조성’이 충만한 대한민국을 소박하게 소개했다. 미국은 이런 나라와 동맹인 것에 대해 감사하고 행복해야 할 분명한 이유를 밝힌 것이다. BTS, 블랙 핑크, 미나리, 기생충의 호명은 그 뒤로도 이어질 창조성의 구현물이다.
우리는 적어도 지난 오백 년 동안은 인류 문명사적 차원의 창조적 작업은 해 본 적이 없는 민족이다.
극단적인 상상일 수 있지만, 우리 민족에게 있어 조선의 건국은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가장 큰 재앙이었다. 물리력을 갖춘 타락한 지방의 세력가가 스스로 중국의 속국을 자처해 중국의 노예가 되는 권리를 산 사건이다.
여기에 가장 크게 봉사한 것이 이른바 ‘성리학’으로 불리는 가공된 유학(儒學)이었다. 성리학은 일본은 물론 발생지였던 중국에서도 더 이상 통치 이데올로기로서의 용도가 폐기되었음에도, 조선은 목숨보다 귀중히 여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또 다른 주인을 찾아 노예가 되는 권리를 구걸했고 결국 성공했다. 그래서 조선은 청나라의 속국에서 일본의 식민지로 주인을 바꾸어 섬기게 된 것이다.
노예(또는 식민지, 또는 속국 등 그것을 무엇으로 부르던)의 가장 큰 특징은 ‘창조성’이 없다는 것이다. 창조성은 자기를 사랑할 때 발휘되는 것이고, 창조성은 사랑하는 대상이 있을 때 표현되는 것이다. 목에 칼을 쓰고 손에 수갑을 묶고 발에 차꼬를 찬 사람들은 절대 창조의 염두를 갖지 못한다.
그래서 모든 지배자(또는 패권국가)는 노예의 창조성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쩌다 천재적인 사람이 출현해 매우 창조적인 업적을 이루기도 한다. 그러나 한때 반짝하고 마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그 창조성을 이어갈 기반이 부실할뿐더러 교활하고 강력한 지배 세력의 조정에 의해, 창조성의 싹이 잘리고 마는 것이다.
창조성 말살의 통치 이념을 가장 먼저 제사한 것은 공자였다. 물론 해석의 방향이 수시로 바뀌기는 했지만, 유학이 왜 중국의 통치 이념으로 그렇게 오랜 시간 군림해 왔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옛것을 배워 전하기는 하되 창작하지는 않으며, 옛것을 좋아하니, 속으로 나를 노팽에게 비기는 바이다.”①
이 구절을 공자의 ‘고전에 대한 애호와 그의 겸허함’②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어리석다. 배워서 전할 옛것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닌 다음에야, 누군가 만든 것일 텐데 왜 본인은 창작하지 않는다고 한 것일까?
공자님도 안 하시는 창작을 감히 누가 할 수 있겠는가? 결국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이런 존재를 ‘노예’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이런 사상을 국가의 지도 이념으로 받아들인 나라에 대해 ‘스스로 중국의 속국을 자처해 중국의 노예가 되는 권리를 산 사건이다.’라는 표현은 지극히 타당하다.
대문 그림 : 고조선이 멸망하고 설치된 한 사군을 그린 지도. 조선은 중국을 철저히 '큰 산'으로 잘 모신 세계 유일의 나라다.(출처, baidu.com검색(https://zrr.kr/nzTT). 검색일, 2023. 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