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空港)은 ‘텅 빈(空) 항구(港)’라는 뜻이다. 모르긴 해도 일본의 번역 냄새가 폴폴 나는 단어다. 지난 세월 그렇게 죽창가를 불렀지만 우리는 오늘도 비행기를 타려면 텅 빈 항구에 가야 한다.
수백 번, 여러 나라의 공항을 다녔지만, 우리 ‘서울 인천 국제공항’은 참으로 보석 같은 공항이다. 편리함, 규모, 청결도, 디자인, 심지어 냄새까지,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가장 훌륭한 ‘텅 빈 항구’ 임에 틀림없다.
이번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붉은 영웅)로 향하는 여정도 ‘서울 인천 국제공항’에서 출발한다. 물 흐르듯 모든 절차를 마치고 탑승구 앞에서 멍 때리는 순간을 다시 맞았다.
그런데 자꾸 실없는 생각이 슬금슬금 일어났다. 이 좋은 공항의 이름을 애매하게 ‘서울 인천 국제공항’이라고 한 이유가 뭘까?
하긴 중국 북경의 공항 이름은 ‘수도(首都) 국제공항’이고 일본 동경 공항의 이름은 ‘나리타(成田) 국제공항’이라고 하니 우리도 동네 이름 붙여 ‘인천 국제공항’이라고 하는 게 잘못은 아닌 것도 같다.
그런데 그러려면 중국을 중국처럼 본다거나, 일본을 쳐다보고 죽창가를 부르면 안 된다. 우리나 그들의 생각의 길(思路)이 많이 틀리지 않거늘!
내가 1988년 처음으로 해외에 나가 착륙했던 공항은 자유중국 수도 대북(臺北) '중정(中正) 국제공항'이었다. 자유중국의 국부 장개석의 호가 중정이라 그렇게 명명한 것이라고 한다. 로마의 공항 이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제공항'이다. 새로 건설한 파리의 공항 이름은 샤를르 드골 국제공항이다. 미국 뉴욕의 공항 이름은 '존 에프 케네디 국제공항'이다.
이들 공항들은 두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자국의 영웅을(문화던, 전쟁이던, 정치던) 남의 눈치 안 보고, 자기 나라 대표 공항의 이름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둘째, 우리 '서울 인천 국제공항'보다 못한 공항들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서울 광개토 국제공항'이나 '서울 이순신 국제공항'이 아니고 '서울 인천 국제공항'이란 말인가?
그런 면에서 볼 때 몽골은 좀 묘하게 다른 구석이 있는 것 같다. 꼴랑 인구 350만에, 덩치 큰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끼어서 지지리 궁상인 나라① 주제에 공항 이름이 '칭기즈칸 국제공항'이란다.
이름 한번 거창하다! 이 아름다운 공항도 소박하게 ‘서울 인천 국제공항’이라고 부르는데, 어떻게 우리도(일본도 중국도)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못하는 걸 몽골이 하지?
처음 하는 모든 일이 그렇듯, 초행길은 다소 불안하고 약간은 흥분되는 것이 사실이다. 거기에 더해 이번에 몽골로 가는 길은 또 다른 뭔가 있는 것 같은 막연한 설렘도 느껴졌다.
올란바타르 칭기즈칸 국제공항에 착륙하기 직전, 입국신고서가 필요 없다는 기내 방송이 들렸다. 세관 신고서도 필요 없다고 했다.
칭기즈칸 국제공항의 입국 심사대 직원은 방문 목적 등을 간결한 영어로 묻더니 굳은 얼굴로 'Welcome to Mongol Sir!"라고 했다. 칭기즈칸이 시킨 것 같았다.
대문 그림 : 울란 바토르 중심부에 있는 수흐바타르광장에 있는 칭기즈칸의 동상이다. 이 장소에 광장을 만든 이유는 말이 거기다 오줌을 싸서 만들었다고 한다(못 믿으시겠으면 검색을 해 보실 것. https://buly.kr/NgRC7b )
① 생각나는 대로의 단편적인 생각. (네이버 국어사전, 검색일. 2023.10.24.)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홍익인간은 얼굴이 빨간 사람이 아니고, 살수 대첩은 물 뿌려 승리한 전쟁이 아니다.
② 틀림없이 이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무식하고 교만하고 저열한 생각은 몽골에 도착하고 두 시간 후부터 철저하게 탄핵된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이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고 나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