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오래 하다 보면 ‘없는 것’이 잘 보인다. 어려운 말로 ‘결핍(缺乏)’이다. 모르고 살 때는 결핍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일단 뭔가 나만 없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엄청난 상실감에 시달리게 된다. 따라서 결핍의 자각은 엄청난 수요를 만들게 된다. 결국 결핍을 각성시킨 자는 떼돈을 벌게 되는 것이다.
난생처음 몽골에 와 일순(一旬 – 10일)을 넘기고 보니 몽골에 없는 것이 보인다. 아프리카에서 청국장을 이야기하거나 남극에서 홍어회를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 중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몽골에는 해군이 없다. 거기에는 매우 심오한 이유가 있다. 몽골은 내륙국으로 지킬 바다가 없다. 그래서 해군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강력한 해군력을 보유한 나라도 몽골 해군을 이길 수 없다
몽골엔 동전이 없다. 돈은 최소 단위인 1투그릭(төгрөг. 우리 돈 약 0.39원)조차도 지폐를 사용한다. 동전은 말 타고 돌아다니다 흘리기 쉽고 한번 흘리면 찾기 어려워 없는 것 아닌가 생각해 봤다. 따라서 몽골에선 짤짤이를 할 수 없다.
몽골 돈 1 투그릭이다. 몽골의 실실 웃는 사자가 왠지 싫지 않다.
몽골엔 대머리가 없다. 아주 없진 않겠지만 내가 체류한 열흘 동안 대머리는 한 명도 못 봤다. 아마도 날이 추워서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스웨덴에 대머리가 있는 걸 생각하면 잘 이해가 안 된다.
스웨덴 파트너인 Mr. Franzon이다. 나이가 들며 점점 샴푸는 적게 쓰고 비누는 점점 많이 쓴다고 투덜거리는 친구다
이미 여기에 착안해 몽골 발모제를 파는 약장사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머리가 안 빠지는 거 하고 빠진 머리가 또 나는 건 다른 문제 같다. 멀쩡히 있는 머리를 홀랑 밀고 다니는 사람도 있는 걸 보면 이곳 사람들은 머리털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어떻게 좋은 발모제가 있지?
몽골 식당엔 반찬이 없다. 뭘 시키던 한 그릇에 다 담겨 나온다. 처음엔 간장이든, 케첩이든, 후추든 이것저것 아쉬웠는데 몇 번 반복하다 보니 별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큼직하게 썬 고기를 잔뜩 올린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마치 발우 공양을 마친 것 같은 묘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딱 요렇게 한 그릇 준다. 포크 하나는 내가 더 가져온 것이다. 오른쪽 우유 같은 것은 수태채 인데 따라 나오는 것이 아니고 1,000투그릭 주고 추가 주문한 것이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는 택시가 없다. 열흘 동안 taxi 상투를 차 위에 단 차는 딱 한 대 봤다. 길에 서서 손을 들면 차가 와서 선다. 그러면 그게 택시다. 우리가 금지하는 ‘자가용 영업행위’는 몽골에서는 합법이다. 결국 모든 자가용은 잠재적 택시다. 그러면 택시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몽골 울란바토르 국영백화점 앞 노천 주차장이다. 여기 있는 차들은 모두 잠재적 택시다
대부분 없는 것을 결핍으로 인식하고 심한 허기와 갈증을 느끼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몽골에서는 그런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유목의 전통은 가진 것을 늘리기보다는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어차피 떠날 자리, 잔뜩이고 지고 살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돌아올 자리, 함부로 지낼 일도 아닌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결혼은 첫눈에 딱 보고 반한 사람과 하는 것이라고 한다.① 어떤 이성이나 계산도 개입하지 않은 순수한 감정을 존중하고 따르라는 의미다. 그래서 낯선 사람과 만나거나 낯선 곳에 갈 때는 항상 감정의 느낌에 귀 기울인다. 그런데 내가 몽골에서 처음 열흘을 살면서 딱 받은 인상은, ‘결핍’은 이들에겐 자극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남의 가죽신 부러워 않고 내 짚신 귀한 줄 알고 사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팔아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쩌면 몽골 사람들과 뭔가를 하려면 이것이 화두(화두)가 되어야 할 것 같다.
하늘이 유난히 높고 파란 몽골고원에서 열 밤 자고 한 생각이다.
대문 그림 : '호-쇼-르'라고 부르는 고기 속을 넣은 튀김 만두다. 딱 요렇게 준다.(수태채는 별도로 주문한 것이다) 만두소도 대부분 고기(양고기)이고, 기름에 튀긴 것인데 묘하게 느끼한 느낌이 크지 않다. 간도 잘돼 뭔가 찍어먹을 소스가 아쉽지 않았다. 하긴 아쉽다고 한들 뭘 어쩌겠는가?
① 나는 실제로 이 말을 믿고 결혼한 사람을 알고 있다. 한 사람은 대학교수였는데 자기 잘난 맛에 정년 전에 그만뒀고 한 사람은 사업하다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