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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기와 인정 - 雍也, 可使南面

제6 옹야 편(第六 雍也 篇) - 1

by 누두교주

내가 알고 지낸 사람 중에 정숙이란 이름의 간호사가 있었다. 윤리적, 도의적, 법적으로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는 사이였으나, ‘으악’이 그 이름을 알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래서 나는 정수기 필터를 교환하는 날엔 필요 이상으로 서둘러 일찍 집을 나선다.


성희는 아버님 친구분의 딸인데, 어쩌다 보니 나와 동문이 됐다. 같은 여의도가 직장이셨던 두 분은, 자주 함께 어울리셨는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사돈’으로 호칭하셨다. 마찬가지로 ‘으악’이 이 사실을 알고 있는바, 나는 절대 ‘성의’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정성’이라는 표현만 쓴다.




지금은 바야흐로 ‘인정’이 집나 간 시대인 것 같다. 본인의 잘못은 일단 인정하지 않는다. 증거가 나오면 ‘나만 그런 것 아니다’라며 물귀신으로 변한다. 처벌이 확정되면 갑자기 독립투사 또는 민주투사의 표정을 짓는다.


다니던 직장에서 잘린 사람이다.... 아마도 노동 운동을 하는 것 같다(사진출처 : https://buly.kr/4xWpfVp (검색일 : 2025.1.28))


싫어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하는데, 인정해야 할 것을 인정하지 않고 박박 우기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결국 인정은 내가 좋을 때, 내가 이로울 때 내가 필요할 때만 가능한 정신작용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




이러한 불인정의 전통은 도학 선생들이 창조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들에겐 조국보다 대국이 중요했고, 부모보다 주자 선생을 사랑했다. 그들은 조선의 왕을 그들의 지도자로 인정한 적이 없다. 그저 그들과 같은 대국의 신하에 불과하다고 믿었다① 단어만 바꾸어 넣으면 지금의 상황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


당시 현실은 청나라의 세상이었고, 청나라 황제는 “만주족의 한, 몽골의 대칸, 티베트의 전륜성왕(차크라바르틴) 일뿐만 아니라 중국의 황제”이기도 했다② 하지만 조선의 도학자들은, 이미 망해 버린 명나라 황제의 연호를 계속 쓰면서 중화(中華)의 단절을 거부하는 정신 승리에 취해있었다. 겉으로는 북벌을 주장하면서도 누군가 진짜 북벌을 실행하려고하면 탄핵했다③




그들이 목숨보다 중하게 여긴(사실은 겉으로만) 공자의 경우, 인정할 것은 정확히 인정한 사람이다. 적어도 구질구질하지는 않았다.


옹(雍)이야말로 가히 남면 할만하다(옹에게는 임금이 될만한 풍채가 있다. 남쪽을 향해 앉아서 정사를 볼 수 있을 것이다)④


공자는 이렇게 옹이라는 사람을 쿨하게 인정했다. 나아가 『공자 가어』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깊이 원망하지 않으며, 옛 허물을 기록하지 않았다⑤

물론 주자도 이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다만, 조금 창조적인 표현으로 잘난 척하느라 “마음이 너그럽고 도량이 크며 간략(대범, 소탈)하다⑥”로 네 글자를 창안했다.




인정할 가치, 인정할 지도자 그리고 인정할 규범이 실종된 시대에서 나는 어디서, 누구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반복되는 자기부정의 역사가 어떤 결론을 가져왔는지 경험한 바 있다. 그것을 다시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결코 인정할 수 없다.


.............. 정숙이가 그렇고 성희가 그렇듯 인정은 나와 아무런 이성적 관계가 없다!


① 예를 들면 이덕일 지음 『금기어가 된 조선 유학자, 윤휴』 다산북스. 경기, 파주. 2011. 을 보라.


② 이훈 『만주족 이야기』 너머북스. 서울. 2018. p.322

③ 진짜 북벌을 주장했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의 입법을 시도했던 사람이 윤휴였다. 당연히 무늬만 북벌을 주장했던 도학선생들에게 탄핵되었다. 이덕일 지음 『금기어가 된 조선 유학자, 윤휴』 다산북스. 경기, 파주. 2011.


④ 장개충 역주 『알기 쉬운 론어』 흑룡강 조선 민족 출판사. 하얼빈. 2016. p.153. 원문은 다음과 같다. 雍也는 可使南面이로다.


⑤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지음 이기동, 임옥균, 임태홍, 함현찬 옮김 『논어징(論語徵) 2』 소명출판. 서울. 2010. p.p. 8~9 재인용.


⑥ 成百曉 譯註『顯吐完譯 論語集註』傳統文化硏究會. 서울. 1991. p.105. 4글자의 원문은 관홍간중(寬洪簡重)이다.


대문 그림 : 정수기다. 이걸 보면 가끔 흥분하는 사람의 심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출처 : 네이버. 검색일 202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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