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걸음과 빈배
지금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엔의 메콩강은 반만 라오스의 강이다. 라오스 건너편은 태국이다. 하지만 라오스의 고도(古都)인 루앙 프라방을 흐르는 메콩캉은 오롯이 라오스의 강이고 그래서 라오스의 땅만 적시며 흘러간다.
건기의 끝 무렵인데도도 루앙 프라방의 메콩강은 그 풍만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아마도 메콩강의 원류에 칸강이 물을 보태 수척함을 면하는 것 같다.
루앙 프라방 시내에서 메콩강을 만나기 위해 내려가야 하는 계단에 다다르면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상징을 만난다.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튼실한 해태(해태)도 아니고 중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무식해 보이는 사자도 아니다. 그런데 딱 보면 일단 웃음부터 나온다. 나는 이 녀석을 ‘메콩강 코흘리개 알비노 해태’라고 명명했다. 그래도 몸매는 해태나 사자보다 늘씬하고 육감적이다.
메콩강으로 가는 계단을 내려가 본격적으로 강을 만났다.
강은 항상 사람들을 부른다. 수천 년 전 노래를 모은 『시경(詩經)』의 첫 작품도 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강의 물수리는 구욱 구욱 울고, 아리따운 아가씨는 사나이의 좋은 짝이었다"①
지금도 메콩강에는 올망졸망 물풀을 이리저리 찾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다만 아가씨는 아닌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사나이’도 보였다. 메콩강 아저씨는 아마도 다슬기나 조개를 줍는 것 같았다. 메콩강 군자와 요조숙녀는 이렇게 딴 물이끼를 파래처럼 말아서 새벽시장에 내다 판다.
관광객들의 소란스러움을 피해 배 뒤쪽에 혼자 앉아 강을 즐겼다. 폭이 좁고 긴, 그래서 날렵해 보이는 빈 배가 보였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문득 또 문자가 생각났다. ‘
"사람이 자기를 텅 비게 하고서 세상에 노닌다면 그 누가 그를 해칠 수가 있겠는가! 설령 부딪친다고 해도 빈 배를 욕할 사람은 없다"②
물론 좋은 말이지만 나를 텅 비게 하면 나는 좋을지 몰라도 주변 사람이 고생하지 않을까?
상류로 얼마나 배를 몰았을까? 생각지 못했던 풍경을 만났다. 낯선 암질의 돌들이 물 밖으로 몸을 내밀고 있었다. 처음엔 비늘이 성성한 용(龍)처럼 보였다.
그런데 가까이 갈수록 와불(臥佛-누워있는 부처)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반적인 와불은 모로 누워있는데 메콩강의 천연 와불은 하늘을 보고 벌렁 누워있는 모습이다. 무릎을 세우고. 우기가 지나고도 같은 모습일지 꼭 한 번 다시 와 보고 싶다.
메콩강 코흘리개 알비노 해태의 배웅을 받고 장자(莊子)의 허주(虛舟 - 빈 배)를 만나고 수상 와불을 지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강변에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는 그런 일상 말이다.
해남에서 뒤돌아서면 땅의 시작이라고 했던가? 강에서 계단을 올려다보니 저기가 루앙 프라방이다. 길 위의 걸음은 같은 걸음이지만 방향에 따라 그렇게 이름이 다르다.
대문 그림 : 메콩강이다(이글의 모든 사진 출처 : 나)
① 김학주 지음 『새로 옮긴 시경(詩經)』 명문당. 서울. 2010. p.90. 시경을 펼치면 제일 처음 나오는 詩다. 제1편 국풍(國風), 제1, 주남(周南)의 수관(首冠)을 장식하는 관저(關雎)라는 시다. 윗글에서 인용한 구절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 關關雎鳩 在河之洲 窈窕淑女 君子好逑 – 구욱구욱 물수리가 황하 섬 속에서 울고 있네. 아리따운 고운 아가씨는 군자의 좋은 배필일세.
② 钱穆 지음 『庄子纂笺』新知三联书店。 北京。 2021. p.202. 원문은 다음과 같다. “人能虛己以遊世, 其孰能害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