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외편」, 제20편 [산목]
만일 여행을 가서는 안 될 이유를 찾고 싶다면, 유시민이라는 사람이 쓴 『유럽도시기행 Ⅰ』이라는 책을 권한다. 여행을 이렇게 다니면 안 된다는 교훈과, 책을 이렇게 쓰면 안 된다는 가르침, 그리고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일깨움을 함께 선사하는 보기 힘든 책이다.
그는 내려다보는 여행을 한다.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에서 길을 대한다. 여행은 겸손해야 한다. 최소한 나를 대하는 만큼 상대를 인정할 때 가능하다. 뱀발삼아 이 책에 나타난 유시민의 모습을 옮긴다.
미켈란젤로는 1534년 로마에 와서 바티칸 교황청의 성베드로 대성당(이제부터 지면을 아끼기 위해 ‘대성당’으로 줄이겠다.- 강조는 유시민. 133쪽)①
...... 제단 아래 지하에 있는 역대 교황의 관, 성베드로 대성당의 모든 것들이 권력의 광휘를 내뿜었다(밑줄은 내가 그었다. 149쪽)②
누가 지면 줄이라고 한 적 없다. 3~4일 출판사 돈으로 적당히 이름 난데 돌아다니다, 책이라고 써서 용돈 버는 유명하고 잘난 사람을 탓하고 싶은 생각은 물론 없다. 그것도 책이라고 읽은 내가 바보려~니~ 한다.
세월이 심란하니 마음도 산란하고, 살림살이가 팍팍하니 디포리 소갈딱지 같은 마음 씀도 폭폭 해 진다. 그 많은 산의 정기는 다 나를 피해 갔고, 국가나 사회에 기둥은커녕, 건강보험 연체나 면하려고 궁리를 굴리는 내가 안쓰러워 길을 나섰다. 지난번 문경 길이 나쁘지 않았던지라 근방 안동으로 길을 잡았다.
안동(安東), 억지로 뜻을 새겨보면, 편안한 동쪽, 또는 동쪽을 편안히 한다는 뜻인 것 같다. 우리나라는 중국에서 보면 동쪽에 있다. 서쪽 짜장면(우리가 중국을 볼 때)이 우리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그 자리에 설치한 행정기관이 안동 도호부다. 그 짜장면들은 지금의 베트남을 못살게 굴고 안남(安南) 도호부를 세웠다. 이름이 그다지 마뜩치않아, 안동에 도착하기 전엔 그저 간 고등어나 찜닭으로 색다른 점심 정도나 기대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심드렁한 마음은 ‘달팽이 노천 변소’를 보고 다채로운 감탄사③로 바뀌었다. 학문과 권력의 지역 거점인 서원(書院)의 높은 누각에서는 지체 높은 양반님네들이 공자왈, 맹자왈 할 때, 미천한 아랫것들은 여기서 시원하게 뭔가를 갈긴 것이다.
영국 여왕이 ‘가장 한국적인 것을 보고 싶다’고 해서 모시고 갔다는 하회(河回 – 물돌이) 마을을 찾았다. 민속촌과 같이 옛날을 박제화 시켜 파는 장소가 아니고 아직도 사람들이 사는 동네이다. 볼 것이 많았지만 내 눈에는 "천하에 쓸모없는 나무"들이 가장 좋았다.
장자가 산속을 가다가 가지와 잎새가 무성한 큰 나무를 보았다. 나무 베는 사람이 그 곁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베지 않았다. 그 까닭을 물으니 "쓸만한 곳이 없다"라고 대답했다④
잘난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쓸만한 곳이(無所加用)이 없어 저리도 장하게 자란 나무! 참으로 나 같은 나무 아닌가! 곧은 나무는 먼저 잘리고 단 샘물은 먼저 마르는 법⑤ 쓸모없는 내가 뿌듯해지는 순간이다.
안동에 가면 달팽이 변소를 찾아보라! 그리고 천하에 쓸모가 없어 보이는 나무를 찾아보라. 나처럼 쓸모없이 빌빌거리는 한심한 사람들 천명이 누워도 넉넉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을 것이니......
서울 가는 버스를 타러 가기 위해 터덜거리고 걷다가 점빵에서 1,200원짜리 하드를 사서 물고 하늘을 보았다. 어느 바람결에 옅은 꽃내음이 실려왔다. 안동은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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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그림 : 쓸만한 곳이 없는 나무이다. 하지만 그 품이 더없이 넉넉하고, 많은 사람들의 맑은 바람들이 쌓여있는 좋은 나무다.
①,② 유시민 지음 『유럽도시기행 Ⅰ』(주)도서출판 아름다운 사람들. 경기. 파주. 2019.
③ 오메!, 허참!, 참말로!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한문으로 쓰면 ‘噫吁戱!’ 정도일 것 같다. 우리가 잘 아는 이 태백의 시, 촉도난(蜀道難)에 나오는 표현이다. 李白 지음, 管士光注 『李白诗全集:上下』人民文学出版社。 北京。 2024. p.51
④ 장주 지음. 김학주 옮김 『장자 하』 ㈜을유 문화사. 서울. 2000. pp.46~47 원문은 다음과 같다. 莊子行於山中, 見大木. 枝葉盛茂, 伐木者止其旁而不取也. 問其故曰 : 無所加用
⑤ ibid. p.56. 원문은 直木先伐, 甘井先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