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사람이 죽어서 관에 담아 매장했다. 그런데 누군가 그 사람을 봤다고 했다. '맨발에 신발 한 짝만 지팡이에 걸고, 갈댓잎을 타고 물을 건너 서쪽으로 가는 모습을 봤다'는 것이다. 죽었는데 돌아다닌다는 사람이 맨발인 이유는 신발이 젖을까 봐 그런 거 같고..... 갈댓잎에 탑승해 강을 건넌다는 소리는, 매우 큰 갈댓잎이 있었거나, 아니면 발이 매우 작은 사람이라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그런데 신발 한짝은 어디갔을까?
사실 확인을 위해 무덤을 파 관을 열어보니, 시체는 간 곳 없고 신발 한 짝만 남아있었다고 한다. 베트남 중부 냐쨩인지, 달랏인지 어느 절을 빌빌 거리고 다닐 때 이 이야기를 표현한 사실적인 작품을 만난 적이 있다.
중국에 불교를 처음 전한 할아버지(初祖), 우리가 보통 달마대사라고 부르는 이 중은 매우 못생겼다. 특히 눈을 자세히 보면 눈꺼풀이 없고 따라서 속눈썹의 존재 기반이 상실된 것이 관찰된다.
전설에 따르면 공부를 하는데 자꾸 눈이 감기자, 눈꺼풀을 오려 던져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던져진 눈꺼풀에서 식물이 발생했는데 그것이 차(茶, tea) 나무가 됐다는 것이다.
암튼 달마는 소림사에서 폼 잡다 혜가(慧可)라는 짜장면 제자에게 법을 전하고 집에 갔다고 한다. 그때부터 짜장면 불교(격의불교라고 한다)의 전통이 시작된다는 짜장면 불교의 제네시스다.
장자를 읽다가 불현듯 달마대사를 소환한 이유는 ‘전남 함평군 진절섬’ 출신 최진절(공문서 위조를 통한 개명으로 지금은 ‘최진석’이라고 한다)의 책을 보다가 갑자기 생각났다. 맞다! 달마 대사의 눈이 낯설지 않았던 이유는 백두산 범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짙은 호박색의 형형한 눈빛!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인도에서 온 달마대사와, 조선의 백두산 범. 그 둘의 눈은 닮았다. 그리고 둘의 공통점은 눈 말고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사는 그 무한한 자유로움에 있다.
백두산엔 지금도 눈발이 날린다는데, 분명 다가올 어느 날 백두산에 오른 나를 상상해 본다. 아직 조금 남은 수갑, 족쇄, 굴레, 기미, 고삐들이 끝내 삭아 흩어지는 날, 난 그 첫걸음을 백두산에 가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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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그림 : 짜장면 달마도다. 뭔가 맥이 없고 느끼한 것이 꼭 삼국지의 장비를 보는 것 같다(baidu.com 검색. 검색일. 오늘)
① 호랑이는 범(虎)와 이리(狼)를 뜻 한다. 그 보단 울리말 '범'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