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
한국에서는 평생 박물관 한번 안 가본 사람도, 프랑스에 가면 이상하게 루브르 박물관을 기웃거린다. 그리곤 마치 경쟁하듯, 하나라도 빼놓지 않고 보려고 이리저리 헤매다, 다리 아프고 배고픈 신체적 한계를 수용하고 철수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곤 뭘 봤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여러 번 파리에 걸음을 했어도 한 번도 루브르에 들리지 않았다. 좀 더 솔직히 말한다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뜩이나 일정 빠듯한 출장길에 계획적으로 짬을 내기도 어렵거니와, 어쩌다 눈먼 시간을 만나도 ‘시장조사’의 명분으로 백화점이나 로드 샵을 쏘다니는 정도였다.
그런데 더 미룰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는 자각과, 패션 관련 Business 측면에서 루브르를 가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사실 나는 이미 여러 권의 관광 책자를 섭렵했고 유튜브 동영상도 몇 개 챙겨본지라, 루브르 박물관을 반쯤은 관람한 기분이었다.
나는 나름대로 루브르 박물관을 보는 나만의 관점을 이미 정립했다!
가장 맛있는 라면은 남의 라면 한 젓갈 뺏어 먹는 것이다. 수박의 가장 맛있는 부분은 잘 익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삼각형으로 잘라낸 부분이다. 난 루브루에서 ‘수박’과 ‘라면’를 구현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내가 좋은 대로 볼 것이다.
하지만 루브르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첫 번째 놀라움은, 으리뻑적한 회화와 조각 옆에, 샤넬, 보테가 베네타 같은 상업 브랜드 신제품 샘플이 나란히 전시된 광경이었다. ‘오뚜쿠르(Haute Couture) 전시회’라는 명목이었지만, 그 옆의 값비싼 원단과 재단 라인 속에는 장인의 숨결만이 아니라 시장의 냄새도 함께 묻어 있었다.
관람이 거듭될수록, 잘 팔리는 제품은 얼른 베껴서 생산해 팔거나(근접 기획이라고 한다. 바바패션이 잘했다), 해외 도매 시장에서 옷을 사다가 라벨만 바꿔 파는 우리나라 패션계의 초라함이 떠올랐다. 동시에 가끔은 북한보다 경직되고 중국보다 말 안 통하는 조국의 공무원들도 오버랩되었다. 나는 패션계 원로의 한 분으로서 깊은 책임감을 통감했다.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도 뜻밖이었다. 당연히 비너스는 하나라고 생각했었는데, 다양한 비너스가 여럿 있었다.
또 자세히 보니 여자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합리적 의심도 들었다. 설령 여자라고 해도, 나는 아마 그녀를 이기기 힘들 것 같았다. 키(204cm)에 104kg 나가는 여자를 무슨 수로 당하나?
스핑크스도 마찬가지였다. 단 한 마리의 고독한 수호자일 거라 믿었는데, 사실 이집트 여기저기 여러 마리가 있었던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옮길 수 있는 건 이놈 저놈 다 챙겨갔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런 물건을 장물이라고 부른다. 루브르가 장물 보관소를 겸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 유명한 루브르의 유리 피라미드도 웃긴 조형물이다. 큰 놈 하나 작은놈 3개, 그리고 뒤집어진 것 하나 포함해 총 5개 있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장물 보관소를 은근히 미화하는 듯한 장치로 보였다.
모나리자!
정식 명칭은 라 조콘다(La gioconda)이다. 루브르 안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곳이다. 눈썹 없는 여인이 실실 웃고 있는 그림이 뭐라고..... 나는 줄 서라고 하면 아무리 맛있는 맛집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맹호는 굶주려도 풀을 먹지 않고, 사나이는 추워도 곁불을 쬐지 않는다② 당연히 대강 지나가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실실 웃는 그림이 한때는 유행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세상에 하나만 존재하는 것은 없는 게 맞는 것 같다.
신격화를 하다 하다, 버선에 수를 놓는 일까지 하는 나라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도 웃음이 났다. 그러나 이 키 작은 친구, 나폴레옹의 일대기를 전시한 방에서는 웃음이 한숨으로 변했다. 화려한 금빛 장식과 진홍색 벽지 속에, 제국의 야망과 몰락이 함께 갇혀 있었다. 중국 공산당보다 붉은색을 더 쓰고, 중국 졸부의 거실보다 금색이 더 번쩍였다.
그렇게 헤매다, 나는 강아지 그림 한 점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샤워를 막 마친 여인의 엉덩이에 물방울이 맺힌 듯,
순진하게 반짝이는 눈동자. 그 천진한 개눈은, 복잡한 역사의 무게 속에서 숨을 고르게 해 주었다. 그 순간, 나의 루브루는 ‘개판’으로 결정됐다.
루브르는 개판이기도 하다! Chien, sois, éternel!③
여행은 언제나 그렇다. 같은 장소를 보아도, 사람마다 그 속에서 발견하는 건 다르다. 가장 맛있는 떠먹는 요구르트는 뚜껑에 묻은 것을 핥아먹는 것처럼, 내가 건져 올린 루브르는 다른 누구의 것과 닮지 않았다. 루브르에서 개 사진만 찍어 온 사람 또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뒤에 보이는 루브르에 또 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 뱀발
대문 그림 : 이른 아침 문 열기 전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이다. 벌써 입장을 위한 줄이 길다. 시간이 좀 지나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 덮치면 신속히 관람을 포기하는 것이 매우 현명하다.
① 키는 실제 조각의 키이고 몸무게는 BMI지수 25를 기준으로 해서 구했다.
② 원문은 다음과 같다. 虎餓不食草, 男寒不近火. 내가 지은 것이다.
③ 개여 영원하라! 는 프랑스어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