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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강(Seine River)과 불난 성당

by 누두교주

내가 처음 센강(Seine River)을 봤을 때 무척 놀랐던 기억이 있다. 프랑스 동부 랑그르 고원의 샘에서 발원해 파리를 가로지르는 강. 수많은 화가의 캔버스와 시인의 문장을 적셔온 프랑스의 어머니강. 르아브르에서 777킬로미터의 여정을 마치고 회색빛 바다와 만난다는 강! 그 위대한 센강의 첫인상은 강(江)이 아니고 개천(川)이었다.


우리 백두산은 세 줄기 큰 물길을 연다. 4,444킬로 미터를 흐르는 사할리 안 울라(흑룡강)와 만나 만주를 품는 승가리 울라(송화강, 해서 강)①, 만주와 한반도의 경계인 얄루 비라(압록강)②, 그리고 수많은 지류가 흘러들어, (萬)을 의미하는 '투먼(tumen)'투먼 비라(두만강)가 그것이다. 내 조상들은 백두산이 낸 큰 물길 사이의 넓은 터를 우리 삶의 터전으로 여셨다.

몇몇 정신 나간 할배들이 조상 땅 팽개치고, 중국 귀신 끼고 반도에 쪼그라들어 사는 궁색한 꼴이 됐지만, 백두에 깃든 단군 할배의 신령은 태백 검룡소에서 '큰 물'을 냈다. 대전(大田)의 우리 이름이 '한 밭'이듯이 한강의 '한'은 크다는 뜻이다. 비록 500여 킬로 남짓한 길이지만, 동쪽 해 뜨는 높은 산에서 나서 서울을 적시고, 서쪽 김포 앞바다 황혼빛 서해에서 바다와 어깨를 만나는 한강. 내가 사는 서울의 강이다.


나는, 우리보다 훨씬 잘 산다는(벌써 이십 년 전이다) 프랑스의 그 유명한 센강은 적어도 한강보다는 훨씬 크고 장엄할 줄 알았다. 그러나 강폭은 담배 한 가치 태우지 못할 만큼 좁고, 강변 고수부지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치맥을 하기는커녕 여럿이 함께 뛰기도 바빴다.


일요일 아침 고수부지를 뛰는 프랑스 애들. 한강을 보지 못한 이들에게 연민의 마음을 가진다.


강변에 매인 배다. 뒤에 작은 배를 보면 작은 태양광 전지를 단 것이 보인다. 태양광은 우선 이렇게 쓰면서 장, 단점을 파악하는 것이 옳다. 우리나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부 잘하는 놈, 팔자 좋은 놈 따라가지 못한다고, 예술과 낭만을 품고 흐르는 센강은, 분단의 역사와 생존의 헐떡임을 갈무리한 한강의 팔자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강에서는 아직 못 아문 깊은 상처와 뜨거운 숨결을 느낄 수 있다면, 센강에서는 왠지 나른하고 편안한 놓여남에 스멀스멀 적셔지는 기분이다.




강변 노점들의 오랜 영화 포스터, 과거 배우의 사진, 오랜 레코드판 등을 힐끔거리며 느릿느릿 얼쩡거렸다. 객지에서는 밥숟갈 놓고 나면 배고픈 법! 센강변의 식당을 기웃거리다 우연히 발걸음이 멈춘 베트남 식당에서 바게트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한국에서 새는 쪽박은 프랑스에서도 샌다. 나는 프랑스 파리 센강변에서 베트남 '반미'를 먹은 최초의 한국인 일지도 모른다. 현지에서 먹는 음식이 여행자의 영혼을 채운다면 나는 이상한 영혼을 지닌 여행자임에 분명하다.



다시 센강을 따라 강 구경, 사람 구경을 하며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센강은 아무리 봐도 규격 미달로 보였지만 그 위를 가로지른 다리의 섬세함, 정교함, 치밀함과 강 같지도 않은 강을 야무지게 가꾸고 살뜰하게 쓰는 손길은 우리와 비 할 바가 아니다. 우린 아직 멀었다!


백팔번뇌를 다 짊어지고 걷는데, 문득 정겨운 조국의 언어가 높은 톤으로 들려왔다.


“저게 불 난 성당이래.”

불난 거 맞고 성당인 것 맞다. 그 아주머니가 발한 명제는 지극히 참이다.


이 아주머니는 틀림없이 불어나 영어가 익숙하지 않으셨거나, '노트르담 대성당'을 까먹었거나 아니면 둘 다인 경우 같았다.


노트르담 대성당(Notre-Dame de Paris)!


고딕 양식이 주는 날카로움, 튀어나올 듯 한 가고일들의 기괴함, 거기에 그을린 흔적과 보수 공사를 위한 설치물들이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노트르담(Notre-Dame)은 우리말로 '우리 성모님'(Our Lady)의 의미라고 한다. 영어로는 세인트 매리(Saint Mary), 이태리어로 산타 마리아(Santa Maria)와 같다. 다만 노트르담은 호칭의 느낌이고 영어나 이태리어 표현은 지칭의 느낌이다.


이 산타마리아 대성당은 우리나라 고려 시대 무신의 난이 일어나기 직전인 12세기부터 파리의 심장이 되어온 고딕 건축의 상징이란다. 종교와 예술, 역사가 얽힌 거대한 시간의 성벽으로 '파리의 영혼'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파리는 가는데 마다 영혼이라고 해서, 영혼이 참 많은 도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는 이 성당을 무대 삼아, 아름다움과 추함, 사랑과 사회적 편견을 겹겹이 울려 퍼지게 한 문학적 종소리였다. 지금은 꼽추는 안 보이고 거지는 심심치 않게 있다.


많은 프랑스 거지는 개와 동업한다.


심드렁하게 불난 성당을 뒤로할 즈음, 나는 거대한 간판을 보고 얼어붙었다.


파리 노트르담을 재건하다 – 뛰어난 장인 기술들

Charpentier(목수)

Archeriste(아치 제작 장인)

Couvreur ornemaniste(장식 지붕 덮개 장인)

Électricien(전기 기사)③


이들의 당당하고 전문가적인 모습에서 그래도 프랑스는 프랑스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자기 이름과 사진을 걸고 경력을 더하는 사람들. 노트르담 대성당은 틀림없이 완벽한 모습으로, 파리 시민들의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




호텔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당연히 출입구를 찾지 못해 헤맸다. 보증금까지 합쳐 9유로를 내고도 꼬질꼬질하고 무더운 역사, 뭔가 오래된 것 같은 탑승장, 좁고 불편한 객차에 탑승해야 했다. 여기에 더해 미로 같은 역사에서 길을 잃고 환승에 실패했다.

천정을 보라! 혹시 전위 예술품인가 하고 한참을 감상했다.


그러나 길을 잃는다는 건 파리에서 어쩌면 하나의 의식과도 같다. 저녁 무렵, 호텔 근처 슈퍼마켓에서 납작 복숭아 몇 개 집어 들고, 치즈와 남아 있던 바게트빵 하나를 반값에 장만했다. 그리고 와인 두어 병을 가방에 채우니, 하루가 하나의 연극처럼 마무리되었다.


프랑스에 가면 반드시 먹어야 하는 과일인 납작 복숭아다. 달고, 물이 많고, 시원하며 싸다. 옆에 작은 것은 체리인데 세상 몹쓸 과일이다.


와인 요정도만 있으면 한 달 살기 어렵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불타고도 서 있는 성당, 길을 잃고도 호텔에 도착한 나, 그리고 여전히 맛보게 되는 납작 복숭아와 와인. 파리에서의 하루는, 결국 삶과도 같았다. 잿더미와 미로, 그 끝에서 찾아낸 달콤한 과일과 빛나는 술잔으로 마무리되는!



대문 그림 : 콩코드 광장 뒤 센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다. 물길이 좁으니 다리가 짧고, 다리가 짧으니 다리 난간이 낮다.


① 큰 강은 울라(ula), 일반적인 크기의 강은 비라(bira)라고 부른다. 사할리 안은 ‘검다’라는 뜻이고, ‘숭가리’는 ‘은하수’를 뜻한다. 만주어 모르는 한국사람 없는 줄 알지만 노파심에 밝힌다.


② 얄루는 ‘경계’라는 뜻. 압록강을 중국어로 '鸭绿'라고 쓰고 '야루'라고 발음한다. 오리대가리 색깔과는 전혀 관계없다.

보다 자세 한 것이 궁금하다면 아래 책의 일독을 권한다. 대한민국 국민, 또는 진정한 대한국이 되길 원한다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다.


이훈 『만주족 이야기』 너머북스. 서울. 2018.


③ 나는 불어를 잘하지만, 시력이 안 좋아 챗gpt를 시켜 번역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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