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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 궁전의 사유(思惟) ‘세즈 페르시'

by 누두교주

궁전이기도 했던 루브르 박물관의 화장실 변기엔 뚜껑이 없다. 어떤 여행기에서도 보지 못했던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나는 사실 전달에 대한 불타는 사명감을 느꼈다.


이른 아침 아직 관람객이 입장하기 전, 가장 잘 정돈된 상태의 루브르 박물관의 화장실이다. 변기 뚜껑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뒤이어 펼쳐진 인류 문명의 정수들인 나폴레옹이 훔쳐온 이집트 석상,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미소, 그리고 희랍의 숨 막히는 아름다움까지— 모두가 뚜껑 없는 변기가 오버랩되었었다.


뚜껑 없는 변기, 줄을 선 수십여 명의 관광객들, 그리고 다급한 눈빛들. 마치 중세의 길거리 배설 시스템이 살짝 현대화된 정도랄까.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은유다. 인류 문명의 정점에 서 있다는 루브르, 그의 화장실은 문명의 뒷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베르사유 궁전에서 나는 또 다른 충격을 받았다. 황금을 물쓰듯 써댄 궁전, 상상 이상의 화려함으로 모두를 압도하는 베르사유는 ‘남녀 칠 세 부동석’이라는 동양적 가치를 대놓고 비웃고 있었다. 베르사유는 ‘한동석’이었다.


베르사유궁전에서 화장실 가는 길.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아는 화장실 가는 줄 알았다.

베르사유 화장실은 남녀 구분이 없었다. 여자가 나온 칸에 남자가 들어간다. 그야말로 남녀 칠 세 한동석이다. 나는 금발의 문신이 독특한 여자가 나온 칸에 들어가 오줌을 갈기며 프랑스 대혁명을 추억했다. 그리고 나는 나오면서 내가 사용했던 변기를 사용할 분이 여자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역시 프랑스는 혁명이 일어난 나라답다. 평등과 자유는 이런 데서도 발휘되는 걸까?


화장실은 맞는데 남녀 구분은 없다. 안으로 들어가면 남성용 소변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방이다. 방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베르사유는 그림과 조각...... 혼이 날고 얼이 빠지는 공간이다. 그런데 화장실은 없다.


나는 밀가루 반죽에다 이렇게 하라고 해도 죽었다 깨나도 못한다. 그런데 화장실은 없다.




프랑스의 우아한 귀족 나부랭이들은 셰즈 페르시(chaise percée)라는 것을 사용했다. 조남국 선생이 좋아하는 직역을 하면, ‘구멍 뚫린 의자'라는 뜻이다. 루이 14세나, 나폴레옹, 또는 마리앙뜨와네뜨까지 여기 앉아 용을 썼다. 그러니 구태여 따로 화장실 만들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지들은 하나도 급한 일 없으니까!


네이버에서 검색한 셰즈 페르시(chaise percée)다. 베르사유에서는 하나도 보지 못했다.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외치는 중국은 보다 섬세하게 관리했다. 서서 쏴와 앉아 쏴를 구분한 것이 그것이다. 나아가 장차 태어날 아이의 변기까지 미리 준비하는 치밀한 후대 계획까지 수립한 자랑스러운 전통을 지금도 지키고 있다.


중국 고대 마통(马桶)이다. 바이두에서 검색했다.


남성 전용이다. 딱 봐도 알 것 같다. 틀림없이 누가 들어줄 거다.


현재도 챙겨가는 고급화된 아이용 똥통이다. 위대한 중화민족은 꼭 중화민족처럼 부흥한다.


일본은 오마루 (おまる / 御便器)라고 부르는 것을 사용하는데 결국 이동식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

일본 요강 오마루 (おまる / 御便器)다. 그런데 일식집에서 본 것 같다는 느낌은 나만 드는 것일까?


다만 그들은 지금도 아름다운 우리의 것을 마음속 깊이 흠모하고 있다. 그래서 요강에 설탕이나 꿀을 소중히 담아놓고 즐겼다는 역사적 기록도 있다고 한다.


우리도 한 세기 전에는 쓰던 물건이다. 남자를 무릎 꿇게 하는 유일한 물건이었다.


조선의 임금들은 매화틀이라는 것을 썼는데, 배설물을 꽃에 비유한 전무후무한 표현이 아닌가 한다. 또한 매화틀의 높이를 인체 공학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힘쓰기 좋은 각도를 구현할 수 있어 보인다.


매화틀이다. 사격 중에는 왼쪽에 있는 것을 넣어, 사격 후 꺼내어 버리고 닦은 후 다음 사격에 대비하는 구조다.

그런데 무엇이 됐던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것에 대해 쓸데없는 지랄①을 한 물적 증거들이다. 지만 생각하고, 일반 백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등신 같은 통치자들의 어리석은 모습은 어쩌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르지 않을까?


지구상에서 가장 화려한 인류 구조물 대표인 베르사유 궁전에서 나는 사유(思惟)했다. 이 기이한 비대칭 - 화려함과 불편함, 느긋한 여유와 급똥의 다급함, 건축의 절정과 인프라의 나락....... 이런 것들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본질 아닐까?


대문그림 : 베르사유 궁전 정문이다. 사진 찍기 가장 어려운 장소 중의 하나다.

① 경상남도에서는 ‘달걀’을 지랄이라고 부른다고도 하지만, 내가 사용한 의미는 ‘함부로 분별없이 하는 행동’의 의미로 썼다. ‘염병’과 아주 훌륭한 패어링을 구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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