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화가’는 매우 낭만적이고 나른한 이름이다. 그들은 순간의 빛을 가슴에 품고 캔버스에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매우 게으르고 주관적이며 제멋에 사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나의 생각은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심통을 내는 신포도를 바라보는 여우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매우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적지 않다. 특히 어릴 적부터 이름을 들으면 항상 뭉클했던 고흐라는 친구는 꼭 한번 만나 말없이 술 한잔하고 싶은 친구였다.
고흐는 뱀띠였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여러 곳을 헤매다 프랑스땅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라는 곳에서 37세의 나이로 우아하지 않은 방식으로 죽었다.
보통 그가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하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죽을 때까지 형을 극진히 생각한 동생과 함께했다. 하지만 더 부러운 것이 있다. 10대에 케이 포스트를 필두로 20대에 클라시아 마리아 호른, 그리고 20대 후반에 마르게리타 배거만, 그리고 30대 초반에는 알린 오노레라는 여자들과 쫓고 쫓기는 관계를 지속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고 그의 말년인 30대 후반에는 자기 정신과 주치의 딸로 19살 먹은 동네처녀 마르그리트 가셰 (Marguerite Gachet)를 마음에 품고 모델로 삼았다. 고흐가 불행했다면 조영남도 불행하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
고흐가 그의 삶 마지막 70여 일을 살던 동네다. 여기서 그는 70일 동안 70여 점의 그림을 그렸고, 단 한 장도 팔지 못했다. 파리 북쪽 30~40리 거리에 있는 작은 동네를 내가 찾아간 이유는 화가의 마지막 그림을 보고 싶어서였다. 새는 죽을 때 그 울음이 슬프고, 사람은 죽을 때 그 말이 선하다고 했다. 그럼 화가는 죽음을 생각할 때 어떤 그림을 그릴까?①
고흐의 마지막 정류장(종점은 아니다)인 오베르 마을에서 그린 그림 중 동네 예배당 그림이 있다. 왠지 높아 보이지만 슬퍼 보이는 느낌.... 그 예배당도 그랬다.
그는 그의 마지막 자리를 바라봤다. 그도 캔버스에 붓을 움직이며 자주 쳐다보았을 밀밭이다. 그를 인도할 까마귀들도 넉넉히 그려 넣었다.
그리곤 밀밭 건너 공동묘지 한구석에 그 천지분간 못하던 몸을 뉘었다. 4살 아래 동생으로 평생 형을 존경하고 사랑했던 동생은 6개월 후에 그의 곁에 누웠다. 그렇게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와 테오도르 필립 루이스 반 고흐 (Theodorus Philippus Louis van Gogh)는 나란히 영면에 들었다.
빌빌거리며 동네를 다니다 보니 작은 바 앞, 노천 테이블에 와인 두 잔이 놓여 있다. 고흐와 테오를 위한 와인이라고 한다. 죽은 이를 기다리는 자리. 혹은, 잊지 않았다는 표시. 그 풍경 앞에 괜히 걸음을 멈추게 된다. 하지만 누군가 마신 흔적은 없다.
당연하지. 사자몫이 있어야 사자가 데리고 오지.... 마땅히 한잔 더 올려 놀 일이다.
마시지 못한 술, 먹지도 못할 밥. 죽은 이들은 오지 않고, 산 사람들만 잠시 서서 마음을 놓고 간다.
길 위에서 산다는 공통점이 나와 고흐를 정서적으로 엮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내 가슴 한편에 갈무리하고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를 뒤로 했다.
다시 올 일 있을까?
뱀발
요즈음 대중 음식점에 부쩍 해바라기 그림을 많이 붙여 놓는다. 동양 철학적 측면에서 보면, 해(日)는 양(陽)의 기운이고, 해바라기는 동그랗게 생겨 돈을 연상하고 노란색은 돈복(財福)을 상징한다는 구라가 가능하다.
하지만 고흐 그림값 오른 것에 비할까?
대문그림 : 고흐의 발길을 따라 가파른 언덕계단을 오르다 발견한 어린 포도송이. 나를 반기는 것 같다. 포도 생각이 아니고 내 생각인 것 잘 안다.
① 원문은 ‘鳥之將死其鳴也哀, 人之將死其言也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