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투앙 벼룩시장과 파리의 그해 여름

by 누두교주

여행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나는 내 마음대로 쏘다니는 것이 좋다. 그러다 힘들면 한잔 하고!

모름지기 사람 사는 모습을 보려면 시장에 가야 한다. 그래서 호텔에서 합리적인 거리에 있는 생투앙 벼룩시장(Marché aux Puces de Saint-Ouen)을 찾기로 했다.

호텔을 나서 어슬렁 거리며 가까운 지하철 역을 찾았다. 도중에 만난 프랑스 비둘기들은 프랑스 오리지널 바게트도 먹다 남기는 것을 봤다.


두 마리가 모두 바게트를 외면하고 있다. 아마 유통기간이 지나지 않았나 상상해 봤다


문득『사기(史記)』 「이사열전(李斯列傳)」에 나오는 ‘쥐 철학’이 생각났다.

변소의 쥐는 더러운 것을 먹고살며, 사람이 인기척만 내도 놀라서 황급히 도망친다. 그런데 창고의 쥐는 쌓여있는 쌀을 배불리 먹고, 사람이나 개를 보아도 두려워하지 않고 여유롭다. "사람이 잘나고 못남은 저들 쥐와 같아서, 그 처해 있는 곳(處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로구나!"①




역 근처에서 동업자 간 불화를 겪는 커플을 만났다. 내부 불화를 겪는 영리 업체가 이익을 낼 수 없는 법..... 그다지 수입이 좋지 않아 보였다.


서로 손발이 안 맞아 돈을 못 버는 것인지, 돈을 못 벌어 서로 쌩까는 것인지......


역 광장에 도착해 보니 역 광장에 인상적인 시계탑이 있다. 여기 사람들은 어느 시간을 기준으로 지하철을 탈지 잠깐 고민했다.


과거 2차 대전 후 북한에 진주한 로스께(소련) 군인들은 손목시계 여러 개를 차고 거들먹거렸다고 들었다. 프랑스 봇짱이 더 큰 것 같다


파리의 건축물이 항상 그렇듯 껍질은 그럴듯한데 안으로 들어가니 화장실 부족으로 인한 냄새와 좁은 공간, 실내밝기 관리 실패등이 파리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 역도 그랬다(역 이름은 당연히 잊어버렸다)


나는 이역을 프랑스 왕십리 역이라고 명명했다. 여러 노선이 겹쳐 지나는 것이 왕십리 역과 다르지 않다. 외부는 프랑스가 왕십리역이 내부는 한국 왕십리역이 좋다.




지하철을 한번 갈아탄 후 생투앙 벼룩시장에 도착했다. 벼룩시장이라고 해서, 집에서 쓰다가 안 쓰는 물건, 주말에 거래하는 줄 알고 오래된 성경책, 손때 묻은 와인병따개, 편지칼 등 몇 가지 살 것을 상상했는데, 완전히 속았다! 생투앙 시장은 남대문 시장, 광장 시장, 그리고 인사동에 익선동 까지 있었다. 당연히 정신줄을 놓쳤다.


프랑스 채칼 장사다. 마이크 시스템과 시크한 흰색 반팔셔츠, 여름에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을 하고 불어로 중국제 채칼의 다양한 기능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한국의 국가공인 조리기능사님이 프랑스 어물전을 찾았다. 꽁치 고등어는 없지만 연어와 새우가 많았다.


암튼! 우선 사람들을 살피니, 내가 그 자리에 서있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상 속의 전형적인 프랑스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았다. 휴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무척 많았다.


다양한 올리브 피클, 토마토등을 파는 곳이다. 다만 김치와 젓갈은 없었다. 황석어 젓이 있었으면 살까 했는데......


그런데 내가 채칼이나, 옷가지나, 새우를 사러 온 것이 아니고, 나는 프랑스의 일상적인 삶을 느낄 수 있는 벼룩시장에 온 것 아닌가? 그래서 유창한 불어로 내 의견을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주변에 알아들을 것 같은 프랑스 사람처럼 생긴 사람들이 안보였다. 그래서 다시 검색을 하면서 빌빌 거리고 싸다녔다. 그러다가, 한눈에 딱 봐도 얼마 안 가 망할 것 같은 시장을 만났다.


조각 사세요~~ 최근 석고 조각에 시커먼 것을 고의로 입혀 마치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했다. 아무도 안 샀다. 나도 안 샀다. 골목 하나 전체가 이런 분위기였다.


속았거니 하고 이른 점심 먹을 곳을 찾다가 제대로 된 곳을 찾았다. 인사동으로 보기엔 현대적이고 국제적이며 규모도 컸다.


이 정도는 꾸며놔야 고물상이라고 할 수 있다.


'마담 스핑크스'라고 명명했다. 도둑질한 장물에 자기 마누라 얼굴 새긴 마음이 이해가 될 듯도 하다



'바이킹 여왕의 피좌(皮座 - 가죽의자)'라고 명명했다. 우리나라 임금은 '옥좌'에 앉고 바이킹 여왕은 가죽의자에 앉는다. 여기는 파리다.


'예수의 공중부양'이라고 부르고 싶었는데.... 얼굴을 자세히 보니 머털도사를 닮았다.


일본의 골동품과 한국의 골동품을 섞어놓고 '진짜 일본 골동품'이라고 자랑했다. 설명을 다 듣고 나는 한국 사람이라고 했다.


구석에 중국제로 보이는 돌사자가 있다. 아마도 대를 이어 장사하는 집 같았다. 돌사자는 아버지가 훔쳐온 거고 아들은 잘 모르는 것 아닌가 상상해 봤다.


해리 포터에 나오는 부엉이 중 한 마리 아닐까? 부엉이가 귀가 있나? 올빼미가 귀가 있나? 탁자의 물고기는 살집이 푸짐하다


나는 아무렇게나 생긴 나무에 투박하게 끼워 밖은 낡은 와인 따개가 사고 싶었다. 하지만 거기에 소비할 20유로가 없었다. 속 상했지만 와인따개를 사고 며칠 와인을 굶느니, 대충 따더라도 와인을 마시는 게 낫겠다 싶어 아쉬움을 달랬다.




동서남북 구분 못하고 돌아다니다,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당연히 왔던 길 말고 새로운 길을 찾았고 매우 당연히 길을 잃었다. 덕분에 오래전에 알던 친구를 만났다. 그는 대단히 권위주의적인 군인 출신 대통령이다.


동상의 머리 부분이다. 기어 올라가 청소하긴엔 어려움이 있어 거미줄이 보인다.


그는 제5공화국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합법적인 쿠데타'와 같다는 비판도 받았다. 전국을 휩쓴 학생 및 노동자 시위에 대해, 그는 시위대를 향한 경찰의 강경한 진압 및 공권력 사용을 감행했다. 심지어 사설 경호 및 정보 조직까지 운영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 군대도 파견하고, 독립적인 핵전력을 개발했다(그거 하라고 누가 돈 준 적 없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이 사나이는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1890년~1970년) 이다.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의 동상이다. 지금도 누군가 꽃다발을 가져다 놓았다. 걷는 폼이 이주일이 '수지큐' 노래 부를 때 워킹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고향에서 심근경색으로 자연사했으며, 국립묘지가 아닌 고향의 공동묘지에 묻혔다. 정치적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공적만 있는 사람도 없고 잘못만 있는 사람도 없다.




길을 더듬어 찾아 호텔 근처 마트에서 와인과 안주를 주섬주섬 챙겨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 코펜하겐에서 봤던 인어 아가씨 뒷모습을 닮은 프랑스 처자가 눈에 들어왔다. 파리는 서울보다 덥지는 않지만 이전보다는 덥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아마도 프랑스 따릉이를 빌려 타는 것 같다. 대림동 조선족 말로 "야~ 이카면 좀 더 더워도 나쁘지 않겠다 야!"


그해 여름, 나는 파리 시장구경을 갔었다......



대문 그림 : 시장 입구다. 어느 시장 입구인지는 지금도 모른다.


① 원문은 대충 다음과 같다. 이사의 깨달음은 밑줄 쳐 놓았다 : 見吏舍廁中鼠,食不絜,近人犬,數驚恐之。斯入倉,觀倉中鼠,食積粟,居大廡之下,不見人犬之憂。於是李斯乃嘆曰:「人之賢不肖,譬如鼠矣, 在所自處耳!」


2. 생투앙 벼룩시장이라고 부르는 동네는, 마르셰 도핀 (Marché Dauphine), 마르셰 베르내종 (Marché Vernaison), 마르셰 폴 베르 세르페트 (Marché Paul Bert Serpette)등 서로 다른 시장들이 모여 있다고 한다. 물론 어디가 어딘 줄 모르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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