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부모님은 시골에서 성장하셨으나 오래전 서울에 자리를 잡으셨다. 당시는 경기도 부천의 빌라의 1층에서 제대하고 복학한 막내아들과 사시니 적적 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내도 같은 생각을 했다고 동의했다. 어린 강아지는 예방 주사도 챙겨서 맞추어야 하고 배변 훈련도 지속적으로 시켜야 하고 사료도 정확한 때에 적당한 양을 줘야 하는 등 신경 쓸 일이 많다지만 잘 큰 개는 그럴 필요가 없어 매우 수월할 것이라고 했다. 아내도 같은 생각을 했다고 했다. 아내는 거기에 덧붙여 “집을 잘 볼 수 있는 적당히 큰 개가 좋다 “ 는 의견을 보태, 매우 합리적인 결정을 가능케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소통은 결국 탱이를 부천 아이들 외갓집으로 보내는 결론을 유도하기 위한 ”가증스러운 자기 합리화 과정“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할 수 없었다. 어느 주말 아내가 운전하고 아이들과 탱이를 데리고 처갓집을 향했다. 가는 내내 돌돌 말은 종이로 탱이 코를 때리며 ”진정하라 “고 반복했다. 탱이도 몇 번 왔던 곳이라 익숙했고 우리도 마치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밥 먹고 떠들다 집으로 돌아왔다. 다만 오는 길에는 탱이를 데리고 오지 않았고 돌돌 말았던 종이도 놓고 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아내도 갑자기 운전을 잘했다.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자 바닥에 기다렸던 개털이가 무릎까지 뛰어오르며 반겼다. 욕실에 오줌도 쌌고, 저녁밥 줄 시간을 넘긴 데다가 외출했다 돌아왔으니 이 모든 것을 정산해 먹을 것을 달라는 것이리라 모두 생각했다. 우리는 욕실의 개털이 오줌을 치우고, 사료와 물을 준비하고 간식을 챙기느라 분주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