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차가 있을지 모르지만 나에게 있어 중국 북경은 지내기가 무척 힘든 곳이다. 특히 겨울철은 매우 건조하고 춥다. 그래서 베이징 사람들은 그곳의 날씨를 "깐렁(干冷)"이라고 부른다. 또한 공기질도 좋지 않아 알러지성 비염과 아토피의 발작을 무척 쉽게 한다.
중앙난방이 되는 건조한 실내에서 미스트와 립밤을 몇 번이나 사용하며 하루를 마치면 배도 출출하고 갈증도 나는 데다가 눈도 뻑뻑한 것이 뭔가 심하게 결핍되었다는 강렬한 부채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때 가능한 몇 가지 선택지 가운데 하나가 '발 안마'이다. 안마에도 무척이나 다양한 메뉴가 많이 있지만 내가 애용하는 것은 80위안(약 14,000원)에 45분짜리인데 우선 실내가 습하고 공짜로 제공되는 뜨끈하고 진한 차 한 잔과 간단한 안마는 그다음의 맥주 맛을 더욱 상쾌하게 한다.(북경에서는 북경의 옛 이름을 딴 '연경(燕京)'맥주나 동북에서 온 '하얼빈(哈尔滨)' 맥주가 좋다)
두세 번이나 걸음을 했을까! 어느 날 주인 여자가 발 안마를 공짜로 해 주겠다는 것을 제안하는 것 아닌가! 사회주의 국가의 발 안마 집을 경영하면서 나 같은 인격자를 어떻게 알아보는 걸까? 흐뭇하긴 했지만 그 속을 몰라 일단 거절했다. 안마를 마치고 셈을 치르려고 하자 재차 돈 받기를 거절하며 1,000위안(약 17만 원) 짜리 vip카드 구매를 권했다. 대신 돈은 800위안 만 내라는 것이다. 거기에 오늘 안마도 공짜로 해 주겠다는 것이다. 무척 매력적인 조건이었지만 내 소지품을 하나 더 늘린다는 것도 싫었고 더욱이 그것이 '발 안마 집 vip 카드'라는 점이 마뜩지 않았다.
달포가 지나 1월 한 겨울에 전시회를 다녀왔다. 전시회 참관이란 것이 하루 종일 걷는 것이 일이라 무척 고단해 모처럼 발 안마 집을 찾았다. 그런데 해가 바뀌며 요금이 오른 것이 아닌가? 80위안 하던 것이 100위안이 된 것이다. 두꺼운 화장을 한 주인 여자는 징그럽게 웃으면서 진즉에 카드 구매를 하지 않은 나의 어리 섞음을 비웃는 눈빛으로 영수증을 집어던졌다.
곰곰이 되짚어 생각해 보니 이 발 안마 집은 값을 올릴 궁리를 진즉에 해놓고 할인카드를 판매하는 영업을 한 것이다. 카드를 산 고객은 그 카드의 금액을 소진하기 전까지는 꼼짝없이 그 집을 다녀야 되는 구조가 된다. 하지만 더 많은 돈을 내야 하는 나 같은 사람을 보면서 안도할 것이다. 나 같은 고객은 오른 값을 치르며 다음에 카드 살 기회에는 꼭 사겠다는 결심을 하게 하는 작전인 것이다. 아마 카드가 잘 팔리지 않았다면 요금 인상을 보류하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
2017년 우리나라 최저 시급은 6,470원이었다. 그런데 2018년 갑자기 7,530원(+1,060원, 16.4% 인상)으로 올렸다. 2019년은 8,350원(+820원, 10.9% 인상)으로 올려 금방 10,000원에 이를 것 같았다. 소상공인은 고용인원을 줄이고 그래도 안되면 문을 닫았다. 최저임금이 적용을 받는 서민은 오른 임금이 잠깐은 좋았지만 줄어든 일자리와 악화된 고용환경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지난 4년 동안 2,250원 올랐다. 1년에 563원씩 올린 것과 다르지 않은 결과이다. 하지만 2022년에는 563원을 올리지 못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물론 공약한 10,000원은 지키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괜히 새로 집권했다고 아무 생각 없이 폼 잡다 손해 본 사람들 수만 늘린 정책 결과가 됐다.
이런 상황을 용두사미(龍頭蛇尾 - 머리는 용이지만 꼬리는 뱀) 또는 촌놈 마라톤이라고 하고 전문 도박 용어로는 '첫 끗발이 개끗발'이라고 한다.
오늘도 나라 일에 노심초사(애를 쓰며 속을 태움)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비난할 의도는 추호도 있다. 고스톱을 칠 때도 내 패만 보고 치다 보면 내가 거덜 나는 것은 물론이고 남에게도 심한 민폐를 끼칠 수밖에 없다. 돈 잃고 욕까지 얻어먹게 되는 꼴이 되는 것이다.
국가 민생 관련 정책이 발 안마 가격 관련 정책보다 수준이 낮아서는 서민이 편안하게 생활하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나라 민생 관련 경제분야 고위 공무원의 자질 향상과, 이를 통한 서민생활 향상을 위해 북경에 발 안마 업소 참관 연수를 엄숙히 건의한다.
사진설명.
멀리 북경올림픽 주경기장 '새둥지(鸟巢)가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용(龍)의 둥지이다. 당연히 용의 알을 상징하는 건물도 있고(북경 대극원, 北京大剧院) 날아가는 용을 상징하는 건물도 있다. 날아가는 용을 상징하는 건물이 북경 수도 국제공항이다. 공항의 지붕을 보면 누런색이고 용의 비늘을 상징하는 장식이 있다. 그런데 누가 용의 사생활을 관찰해 납작한 알을 낳고 얼기설기 얽은 둥지에 살며 누런색인 것을 밝혀 냈는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