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사례는 '푸젠 친구(福建佬)'이다. 그는 푸젠성에서 왔다고 하지만 아무도 그의 이름을 모른다. 그는 사람들과 교류할 때 별로 표준적이지 않은 푸젠 방언(闽南语)을 사용해 자연히(自然而然) 푸젠 친구로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결코 경시나 차별(歧视)의 의미 없이 그저 사람들이 습관상 그렇게 부르는 것일 뿐이다.
그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등이 약간 굽고 흰머리가 무더기(簇簇)로 있는 것으로 보아 45세 이상으로 보이지만 사실 38 세일뿐이다. 그는 다른 띠아오마오들과는 달리 웃통을 벗고 지내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그가 피부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몸은 온통 하얗고 검다(一片黑一片白). 그는 매우 일찍 학교를 그만두고 선쩐에 일하러 와서 처음엔 식품 가공공장에 입사했다. 그러나 얼마 안가 피부병 때문에 해고되기에 이르렀고 푸젠 친구는 이 일로 심한 자기 비하 심리를 갖게 되어 지금도 반팔이나 반바지는 입지 않게 되었다.
해고된 이후 용접과 전기일을 배워 '전공자격증(电工证)'을 딴 후 일정 기간 고향에 돌아가 전공 일을 하였다. 당시 그의 집은 매우 가난해 항상 '미리 당겨 쓰는 생활(寅吃卯粮)(1)'을 하였다. 당시 그의 고향에서는 돈이 궁 할 때는 현지 사원(寺庙)에서 돈을 빌려 쓰는 것이 관례였는데 제때 갚지 못하면 이름이 공개되고 망신을 사게 된다. 그리고 한번 망신을 사면 돈을 갚더라도 명예가 회복되지 않아 동네에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게 된다. 그러한 난처한 처지가 된 그는 차라리 다시 외지 품팔이를 나가기로 했다. 그는 전공 자격증이 있어 매우 쉽게 일자리를 찾을 수 있고 임금도 높았으나 일이 무척 고되고 안전계수가 매우 낮아(위험해) 결국은 그만 두기로 했다. 푸젠 친구는 전공 일을 해서 번 돈으로 고향에 새로 집을 지었다.
그는 '싼허'에 하이신신인력 시장이 옮겨오고 외래 인구가 늘어 비교적 큰 소비시장이 형성되는 것을 보고 선쩐과 '싼허'의 익숙함을 밑천으로 휴대전화, 이어폰 등을 파는 노점을 개설해 전공 일에 비해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그는 노점을 하면서도 '꽈삐' 기계는 팔지 않는 등 변함없이 신용을 지켜 그를 아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 '싼허'의 '정보통(包打听)"을 자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비교적 쉽게 생활비를 벌 수 있던 노점 생활은 그를 점점 나태하게 만들어 갔고 아무런 걱정 근심 없이(无忧无虑) 일하기 싫으면 일하지 않는 생활리듬(节奏)에 점점 빠져 들었다. 따라서 형편은 갈수록 악화(每况愈下) 되었다. 그러던 중 그는 갑자기 인터넷에 빠져들었다. 그는 인터넷 게임, 웹서핑, 좋지 않은 동영상 시청, 그리고 인터넷 소설 등에 빠져 심지어 며칠 씩이나 PC방에서 먹고 자기도 했다. 그의 PC방 적립 포인트는 늘어 갔고 마침내 작은 여관의 잠자리에서 쫓겨나 노숙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는 노숙을 하면서도 공중변소나 심지어 소화전을 열어 간단히 샤워를 하고 하루 한 끼에 감지덕지하면서도 담배는 계속 즐기는 생활을 한다. 그는 고향 집에 80 노모가 계시고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지만 사원에서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한 수치스러움에 고향에 갈 생각은 없다. 기술도 있고 심천에 형제자매가 있어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이전의 고단했던 노동의 일상으로 돌아갈 생각도 없다. 이렇게 된 바에야 가끔 날품팔이를 하는 것이 그의 주요한 생활방식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날품을 팔다 끝까지 하지 않고 그냥 돌아오곤 하는데 그 이유는 모집할 때의 조건은 청소하는 것이었는데 실제 현장의 조건은 더럽고 힘든 일(脏活累活)이라서 일하다 말고 장화를 신은 채로 그냥 돌아오곤 하는 것이다. 그는 심지어 영안실(太平间)에서 날품을 팔기도 하는데 임금도 높고 죽은 사람의 물건을 슬쩍할 수도 있다. 날품 팔기를 싫어하는 복건 친구의 또 다른 수입원은 '싼허' 밖을 어슬렁거리며 버린 옷 등 폐품을 을 주워와 몇 위안인가를 받고 '싼허' 유니클로에 팔아넘기는 것이다. 그는 '싼허'에서 노후 생활을 보살피라는 띠아오마오들의 말에 '고향에 지어 논집이 있다', '복건이 선쩐보다 좋다'며 고향을 떠난 사람은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다(叶落归根)는 정서의 대답을 한다. 그러나 만일 연로할 때까지 도시에서 시달리다 고향에 돌아간다면 도대체 무엇이 그의 최후의 보장을 하는 작용이 될 수 있겠는가?
'싼허'에 대부분이 비슷하게 체험하는 ''꽈삐''에는 어떤 좋은 의미도 내포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꽈삐'가 일종의 방어기제로서의 작용을 하는 경우도 있다. 즉 '나 '꽈삐' 되었다고 선언하는 순간, 사중손실(无谓损失)(1)을 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싼허'의 띠아오마오들은 자신들이 '사회의 찌꺼기'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인터넷에서 정의한 '폐인'이라는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다른 사람의 지위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취약계층(弱势群体)'(2)이라는 것이다.
띠아오마오들은 그들이 '꽈삐' 상태에 처하더라도 적극적으로 '평등'을 추구한다. 정확한 예로 고용주가 임금을 체불하는 사태가 발생하면 끝까지 물고 늘어져(不依不饶) 고용주와 투쟁한다. 하지만 띠아오마오들의 이러한 적극성은 임금 체불 등의 경우에만 나타나고 일반적으로 '큰돈 바라지 않고 그저 간단한 생활 또는 기본적인 생존유지만을 추구한다'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일찍이 진정한 ''싼허'따선'이 있었는데 그는 밤에 나와 돌아다니며 빈병을 주워 팔아 하루 10여 위안을 벌어 생활하며 '아무것도 더 원하지 않으며 좇지도 않고(无欲无求)',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간다(逍遥自在)'고 묘사했다. 그러나 새벽 5시에 심지어 100명이 넘는 청년들이 날품팔이 자리를 위해 다투는 것을 보면, 그의 '무욕 무구'는 자기 합리화를 위한 허망한 변명(虚妄说辞)에 불과하다.
(1) 死重损失(deadweight loss, excessburend 또는 allocative inefficiency)은 경제학 용어로 재화나 서비스의 균형이 파레토(pareto) 최적(사회적 자원의 가장 적합한 배분 상태)이 아닐 때 발생하는 경제적 효용의 순손실을 의미한다. (위키피디아 검색, 검색일 2021.02.07)
(2) 취약 계층은 정치 경제학의 새로운 용어로 사회적 생산과 삶에서 상대적으로 계층의 힘과 권력이 미약함으로 인해 사회적 부를 분배하는데 비교적 적게, 그리고 어렵게 획득하는 일종의 사회 계층이다. 따라서 그들은 비교적 빈곤한 상태에 처해있다. (百度검색. 검색일 2021. 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