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사례는 '허풍쟁이(吹牛哥)'이다. 그는 키가 크고 등이 굽었으며 걸을 때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걷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는 유량 생활을 하다가 '싼허'의 명성을 부러워해(慕名) 스스로 왔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그의 몸에 장애가 있지만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고 하기 싫어하는 것이라도 하고, 허풍쟁이 스스로도 그의 고향에는 노동력을 상실한 사람에게는 보장성 정책이 있어 보조(补助)를 신청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싼허'에 온 이유는 여러 사람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허풍쟁이는 농촌에서 독신으로 살면서 노동에는 게으르고 도박을 좋아해 집안사람으로부터 대우를 받지 못하는 처지였다. 정부의 '이주 개발(拆迁改造)'로 집안의 집과 농지가 징수 대상이 되었고 정부는 두 가지 보상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는 새로운 주택을 제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상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허풍쟁이는 집안사람들과 어떠한 상의도 없이 현금 보상을 택해 십여만 위안의 현금 보조를 받았다. 농촌에 있어 토지와 주택의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그의 행위는 집안사람들로부터 업신여김(挤对)을 당하는 계기가 되었고 보상금으로 받은 돈은 도박으로 전부 날려 버렸다. 그로 인해 누적된 여러 가지 문제들은 그를 고향을 떠나 유량 하도록 강제하는 결과가 되었다.
그는 자기 스스로 '업무 청년'을 찾아갔다. 그는 우선 자신의 신분 정보를 이용해 회사를 설립하면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월 3,000위안의 월급을 준다는 광고를 믿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12개 각기 다른 도시에 그러한 회사를 설립하면 아무 일도 안 하고 한 달에 3만 위안 이상을 벌 수 있겠다는 허황된 계산까지 하며 주동적으로 신분정보를 제공했다. 그러나 단 한 푼의 돈도 받지 못했고 신분증을 건넸던 업무 청년은 다시 만날 수 없었다. 휴대폰 번호는 며칠 후 결번이 되어 버렸다.
'싼허'에 온 지 얼마 않되 사기를 당한 그는 심지어 옷을 담아 물품 보관소에 맡겨 놓았던 여행 가방마저 팔아 버리고 노숙을 시작했다. 그는 이미 노숙이 익숙한 '싼허따선'에 진입해 아무 일도 하려 하지 않고 하릴없이 오가며 농담이나 하며 시간을 보낸다. 심지어 "'꽈삐'녀가 나에게 주동적으로 연락을 해온다", "수백만 위안의 복권이 당첨되면 부자가 될 수 있다" 또는 " 지금 내 명의로 되어있는 회사가 큰돈을 내 명의의 통장을 이용해 이체할 때 바로 그 돈을 가지고 도망 가버리겠다"는 등의 허풍쟁이 다운 기상천외(异想天开) 한 말을 하며 가만히 있어도 '하늘에서 떡이 떨어지길 기다리는(等着天上掉馅饼)'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고향의 집과 토지는 이미 팔아 버렸고 가끔씩 식당 밖에서 음식을 쳐다보며 아주 오래도록 우두커니 서있지만(伫立很久) 돈이 없어 들어가지도 못하는 허풍쟁이의 미래는 되돌아갈 수 없는 절망의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