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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해랑 Oct 23. 2024

#1-3. 오늘도 '그냥 쓴다'

손가락의 흐름에 나를 맡긴다



무작정 쓰고 있는 나의 동화는 잠시 멈춤 상태이다. 나는 원래 간결한 글, 확실한 글을 좋아한다. 가타부타 했던 말을 또 하기 싫어하고(특히 글에서) 반복되는 이야기는 지루하게 느끼곤 한다. 내가 썼던 초초초초초초고 역시 나름 열심히 열심히 썼는데, 두페이지가 채 나오지 않았다. 나름 목차 1을 담당하는 이야기를 썼는데 말이다. 여기서 더 살을 붙이면 지저분할 것 같은 생각에 어디다 무엇을 어떻게 더 살을 붙여야 할지 차마 추가로 손가락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로지 나의 기준에서 그랬다. 얼마나 더 친절해야 할까? 얼마나 더 설명을 덧붙이고 얼마나 더 간질한 표현을 첨가해야 할까. 오글거리는 기분이랄까? 아마추어 티가 날 것 같은 기분에 무모하게 내뱉었던 완벽하지 않아도 나는 할 거야!! 했던 그 용기도 내려놓고 이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조차 '완벽'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머뭇거리고 멈춘 거겠지.

멈추지 마, 다시 고. 출발해.



그래서 나의 끄적거림 창작공책을 꺼내서 내 첫번째 친구를 다시 소환해보았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초등학교 6학년인 그 아이를. 그 아이는 오늘 오후 기분이 매우매우 우울했다. 그래서 친구들의 카톡 소리도 다 듣기 싫고, 맛있는 거 사주겠다고 같이 외식하자며 메뉴를 고르라던 엄마의 말도 다 귀찮다. 평소 같으면 메뉴 이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땀이 삐질 나오고 침이 고일 빨간 기름이 둥둥 뜬 마라탕도 그냥 지옥에서 온 마왕스프같다. 며칠 전 나는 친구의 꿀꿀한 기분과 상황만 열심히 공감해주고 그것을 동화의 내용으로 썼더랬다. 그렇게 2페이지 겨우 채웠던 내 친구의 기분. 친구를 다시 불러 물어보았다. 그럼 근데 너 오늘 아침에는 어땠니? 그랬더니 친구가 대답해주었다. 나 사실 오늘 아침에는 이렇게 나쁘지 않았어. 조금 긴장되고 설레긴 했지만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지 몰랐거든. 평소처럼 아니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서 오히려 더 개운했어. 느즈막히 일어나서 가볍게 아침 먹고 친구들이랑 만날 약속도 하고 평소와 다르지 않았는데 정말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생각하니 또 속상하네. 그랬구나. 그래서 너에게 닥쳐온 그 사건이 너를 더 우울하게 했구나.



친구에게 새롭게 질문을 하고 답변을 받았더니 두 페이지나 더 늘어났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야, 그럼 넌 이제 무엇을 할 거니? 엄마랑 저녁을 먹고 들어갈래, 아니면 우울한 아우라를 풀풀 풍기며 엄마에게 괜한 트집을 잡으면서 집으로 돌아가 방문을 쿵 닫고 들어가버릴래? 너는 그래도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어서 일단 밥먹자고 나온 엄마에게 유치한 화풀이를 하기 싫다고 생각해서 억지로 엄마의 기분도 맞춰줄 것 같아. 그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살짝 엿보이는 너의 성격은 엄마와 잠시 떨어져 살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겠지. 살짝은 애늙은이 같은 너의 사고방식도 그 때 할머니와 살며 길러진 걸 테고 말이야. 나의 친구인 너는 이런 아이구나. 다시 한 번 정리하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대화를 해야 한다. 모른 채 궁금함만 한 가득인 채 내 마음대로 판단하고 너의 순간을 모두가 다 안다고 생각하면 안되었던거다. 아침에 기분이 나쁘지 않았기에 상대적으로 더 비참해지고 더 꿀꿀해졌던 거지. 말을 하고 정리를 하고 그걸 나 혼자 알고 넘기지 않고 모두에게 공유해 줘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야기의 의무이다. 반복이라 지루하다고 다 알것 같으니 넘어가자고 하는 것은 스토리텔러의 오만이자 직무 유기이다.


그러니 친구!! 앞으로도 밤이건 낮이건 내가 부르면 언제든지 소환당해 주길 바라. 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내 이야기의 주인공이니까. 내가 너무 나만 생각하고 막 부르는 거 같겠지만 그래도 너도 나랑 얘기하면서 마음 정리가 좀 될걸?? 그렇게 너 또한 이야기가 끝나면 한층 성장한 청소년이 되어있을 거란다. 그래도 내가 너무 막 부른다 싶으면 아아아주 잠깐 딱 한 번만 묵비권(!)을 허용할게. 나도 쓰다보면 슬럼프, 내글완전구려병 걸릴텐데, 짧고 굵게 한 방에 끝내주길 부탁할게. 사춘기도 인생에 딱 한 번 있는 거잖아. 그치?






이렇게 오늘의 우당탕 동화작가 도전도 일단 그냥 진행은 되고 있다. 도전도 진행중, 도전기도 무사 순항중. 정말 의식의 흐름과 함께 손가락의 흐름이 이어지는 '부딪치며 쓰고 있는 우당탕 동화작가 도전기'이다. 그런데 또 살짝 현실로 돌아오면서 오늘 나의 도전기를 다시 올려 읽어보면, 나 좀 미친 여자 같다. (혼자 뭐하는거야 대체. 그냥 나의 세계관이라고 생각하고 넘겨야 하나.) 다른 의미로 살짝 미친 여자 맞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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