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는 가지 않지만 응원한다
아, 지독한 공부 너무 싫다. 수학문제 다 풀고 나면 또 바로 토스모스를 읽자고 하겠지? 방학인데 이게 뭐람. 작년까지는 방학이면 여기저기 놀러다니느라 집에 있었던 적이 없는데, 이번 방학은 왜 이런거야.
"안된다고 했지? 자꾸 안되는 거 가지고 떼 쓸거야? 네가 아무리 울어도 오늘은 안돼!"
깜짝이야. 식탁에서 풀리지 않는 수학문제를 노려보고 있는데 갑자기 저쪽 방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최근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버럭 모드의 큰 목소리였다. 깜짝 놀라 상황을 살피려는데, 소파 쪽에 앉아있던 동생이 울먹울먹 하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아까부터 동생이 엄마한테 '안돼 안돼' 하며 뭔가를 조르는 것 같았는데, 엄마랑 된다 안된다로 실랑이를 벌이더니 결국 혼이 나는구나 싶었다.
나는 엄마랑 이런 일이 있을 때, 상황을 보고 넘어갈 건 넘어가는데 동생은 아직 그게 잘 안되나보다. 진짜 억울할 때가 아니면 그냥 넘어가는 게 훨씬 나은데 말이다. 잔소리가 길어지는 것도 별로고 어쨌든 결국엔 엄마가 하자는대로 해야 쉽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물론 진짜 억울하고 내가 맞을 것 같을 때는 끝까지 싸워야(?) 한다. 그 때는 엄마도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한다. 아무튼 오늘도 동생은 엄마한테 끝까지 맞서고 있다.
아빠를 슬쩍 보니 아빠도 한 발 물러서 있었다. 지금은 엄마가 맞나보다. 엄마가 여전히 화가 난, 단호한 얼굴로 거실로 나타났다. 나는 조용히 수학문제집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피하는 것이 좋겠다. 방에 들어가서 문제집에 집중하려는데 잘 되지 않았다. 자꾸 바깥이 신경쓰였다. 그런데 그 때 방문 앞을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동생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띠리리리', '쿵'. 뭐지? 갑자기? 현관문? 후다닥 일어나 빼꼼 바깥을 살폈다. 동생이 집을 나갔다. 대박. 엄마랑 아빠도 당황하신 듯 보였다. 눈이 동그래져서 서로 쳐다보더라. 아빠는 바로 따라가려고 했는데, 엄마가 막았다. 엄마는 "현관문 바깥 상황부터 보자"며 아파트 월패드를 누르기 시작하셨다. 근데 아빠는 못 참으셨는지 바로 나가셨다. 솔직히 나도 좀 걱정됐다. 동생이 겨울인데 외투도 안 입고 나갔으니까. 다행히 아빠는 금방 동생을 데리고 들어왔다. 동생은 비상구 앞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었다고 했다. 들어온 동생은 여전히 울면서 엄마를 쳐다봤는데, 엄마는 진짜 한 번도 안 쳐다보셨다. 아빠한테 안겨있던 동생이 나가겠다고 또 울기 시작했다. 아빠가 동생을 데리고 방에 들어가더니 무슨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한참 후에 동생이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엄마한테 갔다. 그리고는 엄마한테 조심스럽게 뭘 얘기하기 시작했다. 엄마도 그때는 두 팔을 벌리면서 동생을 안아주셨다. 결국 동생이랑 엄마가 화해를 한 거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휴, 드디어 끝난건가.'
솔직히 오늘 상황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차라리 그냥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훨씬 편한 것 같다. 동생은 그걸 왜 모를까? 어쨌든 동생도 오늘 속상할 것 같긴 하다. 이따가 저녁먹을 때 먹기 싫어하는 반찬 하나 몰래 먹어줘야겠다. 그리고 잘 때도 오늘은 내 옆에서 자고 싶다 하면 그래도 된다 해줘야지. 이런 오빠의 마음을 너는 알려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