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감사한 인연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랬던가, 초봄의 인연

by 늘해랑



일상을 사는 틈틈, 내가 써두었던 동화들을 다시 읽어보며 고쳐쓰며 있다. 사실 일상이 더 급해 이야기는 자기 우물에 갇힌 상태이다. 나 혼자 계속 보다보니 뭘 더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틀에 갇힌 상태로 뱅뱅 돌고 도는 느낌이어서 진전되는 느낌이 없었다.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에는 뭐 하나 제대로 끝마친 게 없는 것 같아서 뭐 이래 저래 동화는 제자리 걸음이었다.


지난 주, 우연히 아니 우연은 아니지, 좋은 인연이 닿았다. 한 출판사와의 미팅이 있었다. 동화를 출간하는 출판사는 아니었지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대표님이 문예창작과 출신이셨던 것이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두근두근 했다. "내 동화 읽어봐달라고 해, 말아?", "처음 봤는데, 이런 부탁해도 되는 걸까?", "아니야, 지금 직접 대면하고 있을 때 미친척(?)하고 들이밀면 그래도 한 번은 봐주시지 않을까?". 헤어짐의 시간이 다가올 수록 머릿 속에서 이러한 생각들이 싸우고 있었다.


결국 욕망이 이겼다. 헤어질 시간이 되어 일어서는데, 쭈뼛쭈뼛 다가갔다.


"저, 대표님. 제가 현재 글쓰기의 마지막 목표가 '동화쓰기'와 '청소년소설쓰기'인데요. 이제 막 시작하고 어디서 배운 적도 없는데, 대표님의 이력을 들으니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아.. 질러버렸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했다. 직접 이렇게 봐달라고 하니 당연히 메일을 보내달라고 하셨다. 그게 어디인가. 수많은 메일 속에 파묻혀 못봤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걸. 일단 봐주시겠다고 했으니 나는 보내보는 것이다. 안읽씹도 상처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했지만 답신을 기다린 것도 사실).


집에 돌아와 내 동화를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내용을 획기적으로 다시 손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읽어보며 어디 오타는 없는지, 앞 뒤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다음 날, 더 늦지 않게, 나를 잊어버리지 않게 곧바로 파일을 첨부해서 전.송.버튼을 눌렀다.


안읽씹도, 읽씹도 상처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하루에 한 번씩 수신확인을 해보는 나였다. 하하. 그리고 어제 '수신확인'을 확인했다. 일단 안읽씹은 면했다. 두근두근.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출근을 해서 폭풍같은 하루를 보냈다. 어마무시한 하루였다. 업무 이외의 다른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하루였다. 휴대폰을 보지도 못한 채 일과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휴대폰의 알림들을 확인하였다.


두둥. 답신이 왔다. 지금 열어보면 운전을 못할 것 같아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메일을 열어보았다. 너무 감사하게도 정말 꼼꼼하게 읽어주신 듯 했다. 칭찬의 피드백과 우려되는 점의 피드백을 주시고, 또 나는 생각치 못했던 방향에 대한 힌트도 주셨다. 나는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소재의 도입 부분으로 읽혔다며 이후의 전개 위기도 생각해보라 조언해주셨다. 단편동화가 아닌 장편동화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해주셨다. 그리고 사족이라며 덧붙여주신 나의 문체와 결이 비슷한 소설들을 추천해주시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이야기도 한 번 써보라며 격려해주셨다.


힘들었던 오늘 하루가 싹 씻겨내려간 기분이었다. 예쁘게 읽어주신 덕분에 나의 동화가 더 예뻐진 것 같았다. 비록 3월 초반은 너무 바빠 더 예쁘게 어루만져주지 못하겠지만 예쁜 내 새끼를 더 예쁘게 다뤄줘야 겠다고 다짐했다.


우연히 닿은 고마운 인연. 그 덕에 나의 꿈이 조금 더 소중해지고 뱅글뱅글 돌던 챗바퀴 돌돌이 도전기 통이 살짝 금이 가 벌어진 것 같다. 그 금이 점점 더 벌어지면 앞으로 곧게 뻗은 작지만 소중한 나의 길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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