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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계절은 순서가 없다

오늘은 여름, 내일은 봄, 주말은 다시 여름

by 늘해랑



용기를 내어 글쓰기를 시작하고 요즘, 나는 장난삼아 자칭(스스로도) 타칭(가장 가까운 나의 가족들이 보기에도) '글쓰는 사람'이 되었다. 작은 자투리 시간에도 책과 글과 함께 있는 모습이 이제 다른 사람 눈에도 보이나보다. 나 그런 사람 아니었는데. 언제부터였을까? 그 시작을 돌아보았다.


지난 봄. 흔히들 입에 붙어 말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라는 계절의 순서가 있듯이 '봄'이라는 계절은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작의 의미를 담고 있는 계절단어이다. 작년 봄, 단단하게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온 새로운 생명들을 보며 나 역시 생기를 얻었다. 나도 뭔갈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무엇인지를 찾아보고 싶어했다. 그 시작은 '그림'이었다. 자신 없다 생각했던 그림을 한 두 조각 슥슥 그려보게 되고 재미를 느꼈다. 그렇게 내가 재미있는 것을 하나둘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름. '책', '글쓰기', '제주' 라는 세 가지 키워드가 우연하지만 계획적으로 나에게 왔다. 봄의 설레임에 기대어 나를 찾아보는 시작을 했다면, 여름에는 찾은 나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진 듯 하다. 그 때 알았다. '그림'인가 했는데, '글'이었다. 이것저것 용기를 내어 시작했더니 찾을 수 있었다. 이글이글 열정적으로 뿜어대서 어쩌면 버겁던 여름의 그 열기를 제주에서 책을 읽고 글을 써보며 단단하게 잘 뭉쳐낸 듯하다.


그렇게 나를 찾아내고 나니 가을겨울도 새롭게 다가왔다. 짧았던 가을은 아쉬웠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내뿜었다. 그 안에서 나도 나의 존재감을 뿜어내고자 하며 여물었다. 또 겨울, 비록 날씨는 매서웠지만 그래도 1년을 되돌아보며 마음을 든실하게 해주었다. 포근한 새하얀 겨울에 감사했다. 돌아보니 그랬다. 나를 찾게 해준 지난 계절들에 감사한다. 다시 돌아올 감사한 계절들을 기대한다. 다시 봄, 또다시 시작의 기분이다.


나는 지난 1년동안 무엇이 변했을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 같기도, 또 엄청난 변화가 생긴 것도 같다. 변함이 없는 일상 속에서 조금은 변한 내가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나는 드라마도 참 좋아한다. 드라마에도 명대사가 어마어마하다. 비록 그것을 어딘가에 옮겨 적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요즘은 필사를 하면서 책을 읽고 이를 옮겨적기도 하면서 맘에 드는 문장들을 수집하는 습관들이 또 생겼다. (알게 모르게 나 참 많이 바뀌었네..) 지난 주 어딘가에 옮겨 적어두었던 '명대사'를 이 곳에 한 번 더 써보고자 한다. 책 구절 필사가 아닌 드라마 명대사 필사이다.



드라마 <스터디그룹> 세현이의 대사.


얘들아, 내가 문제 하나 낼게.

물을 끓이면 어떻게 될까?

물은 끓는 점에 도달해야, 거품이 일어나면서 기화가 시작되는거야.

하지만 그 직전까지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보이지.

그러니까 내 말은, 끓는 점에 도달할 때까지 겉으로는 뭐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어.

그렇지만 뭔가에 꾸준하게 에너지를 가하면 결국엔 큰 변화가 나타날 거라는 거지, 그게 물이든 공부든.




나는 지금 끓는 점에 도달하고 있는 중이다. 끓는 점에 서서히 다가가고 있어서 기포가 보이는 중일까? 아직 큰 변화는 보이지 않아도 꾸준한 에너지를 가하고 있다. 결국엔 큰 변화가 나타나겠지.


3월을 정신없이 보내고 나니 이제야 창밖의 목련이 그리고 불광천의 꽃길이 보인다. 다시 봄. 끓는 점에 도달하기 시작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시작의 계절을 기쁘게 맞이하고자 한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 나라라서 또 그 사계절은 변화와 흐름을 잘 나타낼 수 있어서 글쓰기의 소재로 참 잘 활용되곤 한다. 최근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도 이를 잘 활용해 사람들의 인생드라마로 등극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오애순이, 양금명이 역을 맡았던 아이유의 노래 겨울잠(2021년 노래이다)에서도 아주 멋진 표현이 나온다. 봄 몇 송이, 여름 한 컵, 가을 한 장, 겨울 한 숨 이라니.(이 노래는 떠나간 이후의 남겨진 이들의 사계절을 그린 노래이다.) 그 무거운 의미를 걷어내고라도 이 표현은 정말 훔치고 싶은 표현이다. 사계절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이런 걸 보면 욕심난다. 나도 기깔나는 표현을 만들어내고 싶다. 그래서 용기내어 나도 계절의 이야기를 한 번 만들어본다. 억지일지언정 이것도 연습이지.


사계절은 나의 모든 인생을 표현하기에도, 나의 도전기를 표현하기에도, 시간의 흐름 그대로 나의 1년을 돌아보기에도 또 다시 올 1년을 그려보기에도 참 좋다. 나는 지금 어떤 계절에 살고 있을까.


순서없는 나의 계절. 매일의 나는 봄도 살고 여름도 살고 가을도 살고 겨울도 살고 있다. 몽글몽글 설레는 봄의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기도 하고, 이글이글 뜨거운 여름의 열정으로 하루를 달려가기도 하고, 선선한 바람과 함께 숨을 돌리는 가을의 여유 속에서 나를 정리하기도 하고, 퐁신한 그리고 포근한 겨울에 파묻혀 에너지를 충전하기도 한다. 나의 하루하루는 계절의 순서가 없다. 순서가 없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살고 있다. 오늘은 여름이었다. 내일은 봄일지도. 그리고 주말은 겨울일까? 아니 또 여름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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