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공간이 주는 위로
연휴기간에 큰 결심을 하고 행동을 했다. 그동안 뭐라 정의할 수 없게 있던 두 개의 방을 드디어 아들방, 딸방으로 분리해준 것이다. 하나는 침대 두 개에 각종 교구와 책이 뒤엉켜 있던 '자는 방', 다른 하나는 책상 두 개에 피아노, 장난감 및 놀이재료들을 쑤셔넣은 바구니수납함을 몰아넣은 '공부하는 방'. 진즉부터 해주고 싶었지만 어릴 적부터 구입하고 물려받고 또 언젠간 쓸 수 있을 것 같아 버리지 못했던 것들이 한가득 쌓여있었기에 이를 처리하기가 어려워 미루고 미루고 미뤄뒀던 것이었다. "안보는 건 안 보는 거야!" "안 쓰는 건 앞으로도 안 쓰는 거야!" 를 외치며 큰맘 먹고 왕창 버렸다. 그런데도 공간이 별로 남지 않는 건 정말 의문이지만 그래도 일단 분리는 시킬 수 있었다.
분리를 하고 보니 좋은 점이 있다. 니 것 내 것 구분이 제대로 안되어 침대도 책상도 늘 더러웠다. 치우라고 해도 '이건 내가 한 거 아니야.' '이거 오빠껀데?' '이거 현이 자리잖아.' 책임회피의 핑계가 되어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자리 정리해!" 라고 하면 저건 누가 봐도 자기 책상이고 자기 침대이다. 책상 위가 깔끔하다. 가끔 아침에 보면 기분 좋을 땐 이불 정리 인형 정리도 해 둔다. 니 방 치워! 가 가능하구나.
하나 더 달라진 건 아이들 마음에도 방이 생긴 것이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혼자 있고 싶을 때 틀어박혀 있고 싶을 때, 예전에는 그냥 어느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기의 방에 들어가 책상 아래, 침대 구석에 쪼그리고 앉는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다 마음을 다스리고 슬그머니 나온다. 책상에 앉아 종이를 한 장 꺼내 혼자 이것저것 끼적이고 슬며시 내민다. 사과의 말이 담겨있을 때도, 억울한 마음을 내밀 때 있다. 물리적 공간을 주었더니 마음에도 자기의 방을 만들어 마음 정리하는 법을 익혀버렸다. 아이고 기특해라.
사실 아직도 큰 숙제제가 남아있다. 옷방정리. 아이들이 또 나름 훌쩍 커버려서 지난 같은 계절에 입은 옷이 짤막하다. 그리고 나도 남편도 몸뚱이도 나이도 변했다. 이를 한 번 뒤집어야 하는데, 이걸 하루하루 그냥 해치우다 보니 가랑비에 옷이 홀딱 젖어버린다고 분명 나는 큰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데 집안은 아주 나빠졌다. 어디서부터 처리해야 할 지, 옷장은 옷장대로 또 생활공간에 던져둔 옷들은 또 그것대로 집안 곳곳에 옷무덤이 쌓여있다. 그러다보니 이번에 정리한 아이들 방 말고는 창고같다. 살림이 제일 어렵다.
아이들이 본인들의 방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모습을 보니 얼른 다른 공간도 정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작은 내 공간에 대한 기대까지 하게 된다. 이제 아이들 옷장도 아이들 방에 넣어주고 아이들 물건은 아이들 방에만 두고 남은 공간을 공간답게 만들어보려고 한다. 그 한 쪽 구석에 내 책상 하나, 책장 하나만 놓아도 얼마나 좋을까? 지난 1년 어느 정도 나의 시간을 찾았으니, 이제 나의 공간도 찾아보고자 한다. 우리 집 한 구석에 나만을 위한 한 평 정도는 가져도 되는 거잖아? 그 한 평의 공간은 나에게 아주 큰 위로가 될 것 같다.
아직 없지만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나를 상상하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아이가 자기 방에서 자기를 찾아 한 뼘 더 컸듯이 나도 내 공간에서 또 나를 자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평의 공간으로 마음에도 한 평의 방을 만들어야지. 마음에도 방이 필요하니까. 그 방에서 나를 쉬게 하고 다독이고 성장시키고 싶다. 나만의 공간이 주는 마법. 그 행복한 마법을 뾰로롱- 부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