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 노란 감기약

호로록- 마치는 하루

by 늘해랑





으엣취- 엣취-


큰일이다. 여느 때처럼 넘어갈 줄 알았더니 이번엔 조용히 넘어가지는 않으려나 보다. 며칠전부터 A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목이 간질간질, 따끔거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냥 버텨보고자 집에 있는 초기 감기약을 한 두 알 찾아 먹었다. 그리고 평소보다 일찍 휴대폰을 끄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이런 A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목구멍에서 느껴지던 감기기운은 어느 새 코 끝까지 넘어왔다. 맑은 콧물이 맺히더니, 오늘은 A의 의지와 전혀 상관 없는 재채기까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하아. 병원에 가 봐야 하나."


병원 생각이 살짝 나긴 했지만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A는 오늘까지는 상비약으로 버텨보겠다며 병원이 아닌 집을 향해 걸었다.


오늘은 6월의 첫번째 날. 일년을 넷으로 나눈다면 오늘부터는 여름이다. 몇 주 전만 해도 이 시간은 깜깜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해가 환하다. 바람도 여름바람 같다. 목 뒤로 느껴지는 땀의 기운은 여름 때문인건지 감기 때문인건지. 땀과 함께 기력도 빠져나가는 것 같다.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며 집을 향해 걷고 있는데 상가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울려퍼지는 음악이 A의 귀에 걸린다. A는 자기도 모르게 스르륵 고개를 돌렸다. 한 눈에 바로 셀 수 없을만큼 많은 음료들이 메뉴판 위로 줄 맞춰 서 있다. 평소라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그려진 카페류에 눈이 갔겠지만 오늘은 아래쪽으로 눈이 먼저 간다.


화려한 색의 과일차. 레몬차, 자몽차, 유자차, 청귤차, 생강차.


엣취-


갑자기 또 튀어나오는 재채기. 재채기 끝에 또 알록달록 과일차가 있다.


'한 잔 마셔볼까?'


A는 홀린 듯 커피숍 키오스크 앞에 섰다. 주스/티 카테고리를 터치하고 페이지를 옆으로 넘겨보니 과일차 메뉴가 눈에 띈다. 손가락을 망설이던 A가 선택한 음료. [레몬생강차]. A가 선택한 오늘의 감기약이다. 3500원짜리 따뜻한 감기약.


"대기번호 320번 고객님, 레몬생강차 준비됐습니다."


아르바이트 생의 영혼없는 호출에, A 역시 영혼없는 발걸음으로 픽업대에서 음료를 받아들고 매장을 나선다.


호로록-

공기 반 음료 반, 달콤하면서도 매운 레몬생강차가 A의 혓바닥에서 또르르 구른다. 고춧가루의 빨간 매운맛도 청양고추의 초록 매운맛도 아닌, 생강의 노란 매운 맛. 어른이 되어 알게 된 또 다른 매운 맛. A는 새삼 떠올린 '노란 매운맛'의 느낌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호로록-

다시 한 모금, 레몬생강차를 혀 위에서 또르르 굴려본다. 혀 끝에 매운맛이 퍼지는 순간, 목 뒤가 다시 후끈해진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기운이 난다. 지금의 후끈한 땀은 기운을 빼가는 것이 아니라 감기기운을 빼가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A였다. 오늘의 노란 감기약. 잘한 선택이었다. A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금요일이다. 집에 가면 얼른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어야지. A는 따뜻한 차 한잔 더 만들어 두툼한 이불 안고 넷플릭스나 뒤적거려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입꼬리가 아주 조금 더 올라간다.


A는 뒷주머니에 꽂아둔 휴대폰을 꺼냈다. 습관적으로 만지는 휴대폰이 아니다. A는 시계위젯을 터치해 내일의 알람을 껐다. 내일 아침 감기도 함께 꺼져 있기를. A는 다시 휴대폰을 엉덩이춤, 그러니까 바지 뒷주머니에 꽂아두곤 한 번 더 호로록- 감기약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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