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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공개 May 15. 2021

편지 - 보내지 말 것

혜인이에게

혜인아 안녕? 나야. 혹시 날 기억하니?

아마도 기억나겠지. 그때가 언제더라... 6년 전쯤엔가? 정부에서 지원하는 채용 지원 교육 프로그램에서 만났었잖아. 그때 빠른 년생이 어쨌거니 저쨌거니, 말 놔라 배 놔라 하면서 지냈었잖아.


그때 넌 못난이 인형 같았어. 그렇게 예쁜 얼굴은 아니면서도 뭔지 모를 새침데기 같은 매력이 있었거든. 쌍꺼풀 없이 쭉 찢어진 눈이지만 똘망똘망했고, 울퉁불퉁한 덧니에 살짝 나온 주걱턱이었지만 틴트를 어쩜 그리 예쁜 걸로만 골랐는지. 그러면서도 고집 세지만 당당하고 시원시원한 네 모습이 좋았어. 수년이 지나버린 지금, 너에게 난 그저 서로 얼굴은 기억하는 그런 정도의 사이었을 거야.


인스타를 하다가 우연히 추천 친구에 네 얼굴이 보였어. 긴 생머리에 동그란 컬이 들어간 머리가 아니라 웬 숏컷을 하고 있었더라구? 와, 네가 숏컷이라니. 정말 잘 어울린다며 속으로 생각하고 너의 인스타를 보게 되었어. 그리고 네가 내가 기억하던 얼굴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걸 알게 되었어.


네 얼굴의 반쪽이 일그러져 있었어.


놀랬어. 너의 인스타를 보게 된 건 정말 우연이었어서, 충격이었어. 몇 년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지 모르겠지만, 너는 휠체어에 앉아 웃고 있었어. 아마 휠체어에 앉아 웃기까지, 웃는 얼굴을 인스타에 올리기까지 많은 시간과 결심이 필요했겠지.


화장기 없는 얼굴, 흐트러진 머리. 어그러진 시선, 일그러진 미소. 병상, 휠체어. 가늘어진 다리로 하는 재활치료. 그리고 네가 적어둔 해시태그, #편마비재활. 고작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속에 정방형으로 나열된 사진들만으로 너의 일상을 잠깐 훔쳐보았어.

드문드문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때 그 새침데기의 너도 있더라. '2018년 봄, 복 예쁘다'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말을 걸까, 나의 오지랖이 너에겐 반가움이 아닌 불편함으로 다가오겠지, 나라는 존재 자체만으로 너에게 지난 시절 과거를 불러와 마음을 힘들게 하겠지. 너를 응원하고 도움이 되고 싶은 나의 굴뚝같은 마음은 너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지. 갑작스레 장애를 갖고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들지 나는 그 깊이를 알 수 없으니.


-라는 생각을 했어. 그냥, 뭐랄까. 지금 이대로 내가 너에게 닿지 않는 편이 더 너를 위한 방법이겠다고 매듭을 지었어. 솔직히 애시당초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기도 하지만, 나는 너를 지나쳐버릴 테니, 지금대로 행복하길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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