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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공개 Oct 28. 2020

차원이 다른 개꿈

개꿈 일기

<개꿈>

오늘부로 ㅅ중학교를 그만두기로 하였다. 중학교 더 오래 다녀봤자 내 인생이 나아질 게 없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다소 씁쓸하고 착잡한 끝이었다.

교복을 입은 나는 사물함에 가서 온갖 잡동사니들을 꺼냈다. 자그마한 사물함 속에서 이삿짐 수준의 잡동사니가 쏟아져 나왔다. 수십 개의 인형, 여러 개의 담요, 교과서와 문제집, 교실용 삼선 슬리퍼 따위들이었다. 100L 대용량 폐기물 봉투에 필요 없는 것들을 가차 없이 버려버렸다지만, 야심 차게 비워내겠다는 마음 치고는 버리겠다고 골라낸 5개 인형 중 2개밖에 못 버렸다. 그래도 나에겐 처분한다는 것이 일종의 의식행사였다.

그 날은 ㅅ중학교 졸업 파티가 있는 날이었다. 일종의 살롱처럼 진행되었는데, 3~4인씩 자유롭게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왕따를 당했던 그 반, 그 학생들이었다. 멋스러운 성격에 공부도 운동도 잘해서 친구가 되고 싶었던 ㅊㅈㅇ이 저기앉아있다. 처음엔 나와 친했지만 대세에 맞게 나와 멀어진 파란 색안경을 쓴 ㅇㅇ도 저기에 앉아있다.

잠시 우울했다. 나는 이 학교에서 잘 풀린 게 하나도 없는데, 쟤네들은 당연히 졸업을 해내서.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래도 괜찮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네들보다 더 재밌는 것도 많이 알고, 더 재밌게 놀 줄도 알아. 나는 그걸로 얘네들보다 더 좋은 삶을 살 거야.'


-


꿈에서 깼다. 멍하니 나의 개꿈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꿈에서 '그래도 괜찮아'라는 생각을 했다. 이 무의식이 바로 나오기까지 나는 어떻게 변화한 것인가.


꿈은 미래를 예견한다, 꿈은 반대로 이루어진다, 12시가 되기 전에 꿈을 말해선 안된다. 온갖 속설들이 있지만, 나는 '꿈은 무의식을 반영한다'라고 믿는다.


아마도 현실 친구네 집에서 본 100L 폐기물 봉투가 꿈에 나온 거겠지. 아마도 최근에 놀러 갔던 ㅅ중학교가 꿈에서 회사처럼 나온 거겠지. 아마도 요즘 열심히 뿌듯하게 놀았던 게 꿈에서 나온 거겠지.

근데, '그래도 괜찮아' 무의식은...?


오늘 내가 꾼 꿈은 차원이 다른 개꿈이었다.

나는, 변했다.


- 2020년 9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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