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미야, 달달한데, 짜다
남들과는 특이한 데이트
우리는 서로의 ‘돈’을 보고 만났다. 얼마나 더 많이 벌고, 얼마나 더 잘 사는 집안인지 재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돈에 대하여 알고 있고, 어떻게 돈을 대하고 있는지, 얼마나 건강한 생각을 갖추고 있는지 말이다. 짠순이와 짠돌이가 만나 요즘 시대에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다 큰 성인들의 데이트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전라도에 살고 있는 그는 매주 새벽 막차 버스를 타고 경기도에 있는 나를 만나러 왔다. 금요일 밤, 배달 장사를 마지고 터미널까지 가는 택시비를 아끼러 1시간을 걷는 동안 함께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잠이 쏟아져서 혼미한 목소리로 그가 버스를 타기까지 전화로 그와 함께 했었다. 3시간 정도 버스 안에서 한숨 자고, 서울 터미널에 내려 또다시 지하철 첫차를 타고 1시간 쪽잠을 잔다. 그렇게 우리 집 자취방 문을 두드리면 자다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피곤에 쩌든 상태로 그는 다시 잠들곤 점심 즘 일어나 데이트를 하러 갔다. 그 피곤한 주말에 짬을 내서 하는 데이트는 남들이 하는 데이트처럼 할 수 없었다. 미술관, 박물관은 무슨, 그 먼 길을 오가느라 피곤에 쩌들은 바닥난 체력으로 어딘가 놀러 가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국내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고, 차도 없으니 맛집을 찾아가는 건 지친 그를 두 번 죽이는 꼴이었다. 그리고 다시 그는 일요일 막차를 타고 다시 가게로 향했다.
이렇게 무려 6개월을 반복했다. 나는 아직도 눈을 감으면 새벽 버스를 타고 달려온 그가 잔뜩 지친 표정으로 함박 웃으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이 아른거린다. 한두 번 하고 점점 만나는 날이 줄어들겠거니 싶었는데, 매주 한 번도 빠짐없었다. 도대체 이 괴물은 뭘까. 처음은 ‘나도 남들처럼 데이트를 하고 싶은데’ 싶어 뾰루퉁 속상해 있다가도, ‘생각해 보니 잘됐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데이트 비용이나 모으자’ 싶었다. 어차피 남들처럼 값비싼 데이트 코스를 가는 게 부담되었기도 했었으니.
그 와중에 이 인간 괜한 독한 놈이 아니다 싶었던 건, 게다가, 그는 나를 위해 10년을 피운 담배도 끊었다. 훤칠한 키에 절약정신이 강한 그를 어떻게든 만나보려 했지만, 입 안에서 풍겨오는 니코틴 향이 미세하더라도 몸서리치게 싫었다. 참고 버틸 수조차 없었고, 도무지 어렵겠다 그는 홀로 장사를 하면서 기어코 담배를 끊어내었다. 그가 지금까지 금연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건강은 물론 돈도 절약하고, 일석이조라 가능했다고 본다.
나를 위해 이렇게 먼 거리를 달려오고 담배도 끊어버리는 미친 사랑은 처음이었다. 내가 이렇게나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인가 당황스러우면서도 내심 싫진 않았다. 요즘 내 또래들은 조금이라도 안 맞는 부분이 느껴지면 금방 그만둬버리던데, 이런 근성과 독기라면 어떤 상황이 닥쳐도 이겨내겠구나 싶어 뭔들 두려울 게 없었다. 그게 참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렇기에 우리의 데이트는 저렴했다. 집밥, 김밥집, 집밥. 가는 곳은 항상 정해져 있었다. 스파게티보단 국밥이 좋아 혼자서도 척척 기사식당에 가는 여자치곤 털털한 식성을 가졌기도 했거니와, 애시당초 까탈시러운 그의 눈에 마음에 드는 가게가 몇 없었기 때문이다. 자영업을 해서 그런지 메뉴와 음식 상태를 보며 음식 단가 견적을 내곤 가게 청결도를 쥐 잡듯이 파악하고는, 자기가 마음에 드는 한 가게만 꼭 집어서 죽도록 갔다.
워런버핏은 자신의 돈과 시간을 아끼기 위해 맥도날드 햄버거만을 고집했다던데, 그를 따라 한 가게만 주구장창 다니다 보니 처음엔 서운하기도 했다. 새로운 곳, 새로운 공간을 찾아 탐험하고 함께 재미있는 경험을 쌓는 게 좋았는데, 학교마냥 매일 출석하는 것이 지루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날이 갈수록 오히려 이보다 간편할 수 없었다. 딱히 다른 곳과 비교 분석할 일도 없고, 새로운 곳을 찾아낼 이유도 없었기에,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최고의 가성비 끝판왕인 가게만 조지(?)다보니, 매일 똑같은 코스를 다니며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많아졌다. 하물며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의 소재도 늘 똑같았다. 돈 얘기, 투자얘기, 돈 관련 책 읽기, 자기계발 이야기하기, 앞으로 어떻게 살까 계획하기. 그러다 보니 결혼하기도 전에 어떻게 예산 관리를 할지, 앞으로 어떻게 아이를 기를지 진솔하게 이야기 나눌 시간이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