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공개 Jan 07. 2021

햇빛 알레르기면 어때?

Prologue

“제가 사실 햇빛 알레르기라서….”

라고 커밍아웃을 하면, 돌아오는 질문은 매번 비슷했다.


“와, 그럼 밖에 어떻게 다녀요?”
“아~ ‘태양의 노래’ 봤어요! ‘미드나잇 썬’이었나?”
“햇빛 알레르기면 흡혈귀 같은 거네”


나는 영화나 소설 속 주인공처럼 특별한 사람은 아니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 다만, 햇빛 아래 오래 있지 못할 뿐.

믿을 수 없겠지만, 밖으로 잘 다닌다. 너무 잘 다녀서 탈이다. 그리고 다닐 때마다 바보처럼 고생한다. 햇빛 알레르기라는 이유로 집 밖을 나서지 않기에는 시간과 이 세상이 너무 아까워서, 아직도 가보고 싶은 곳과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어쩌면 나의 소소한 도전정신과 넘치는 호기심 때문에 피부가 너덜너덜해지는 것 아닌가 걱정이 들기도 한다.


나는 아파트 키즈였다. 아파트 숲에서 태어나고 아스팔트를 밟고 자랐지만, 우거진 숲 속의 흙냄새와 벌레들과 꽃잎들을 좋아했다. 움츠러드는 쥐며느리를 모으며 까르르 좋아할 정도로 이상하리만치 깨발랄한 아이였다. 시간이 흐르는 줄 모르고 밖에서 노는 건 기본. 공원 약수터 개구멍을 들락날락하기 위해 흙바닥을 구르질 않나, 아파트 주차장에서 무르팍이 세 번이나 깨지도록 롤러 브레이드를 타질 않나. 삭막한 도시 속에서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정신없이 놀기 바쁜 아이였다.


그래서일까? 앨범 속 어린 내 모습은 늘 구릿빛 피부였다. 까무잡잡한 얼굴과 팔다리. 놀림받을 정도는 아니었는데도 나름의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다. 까맣다는 것. 특히나 우리 언니는 아무리 밖에서 놀아도 항상 하얬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비교하고는 했다. 나와 같은 시간을 보내도 언제 그랬냐는 듯 하얀 피부를 되찾는 우리 언니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래서 나는 항상 이렇게 되뇌었다.


“어른들 모두 새까맣지 않은 걸 보면, 여름에 까맣게 타도 겨울에는 다시 하얘지겠네? 난 하얘지고 있는 중이야…!”


까만 피부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어린 나는 몰랐다. 그때의 까만 피부였다면 지금은 조금은 달라졌을까.



어린 나, 지금의 나, 쥐며느리
작가의 이전글 검은 폭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