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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공개 Jan 17. 2021

햇빛 알레르기의 시작(1)

햇빛 알레르기면 어때?

‘마비노기’라는 게임이 있다. 어렸을 때 가장 오랫동안 뭉근하게 좋아했던 게임인데, 어린 나는 마비노기라는 가상현실에 한번 접속하면 푹 빠져 한 2시간은 꼼짝 않고 정신없이 몰두하기 일쑤였다. 이런 내 모습이 한심스러우면서도 걱정이 되었던 엄마는, 게임에만 빠져 사는 나를 데리고 오랜만에 등산을 가자고 하셨다.


별다른 준비 없이 집에서 입고 있던 그대로, 진분홍색 민소매 티만 덜렁 입고 동네 뒷산인 장산으로 향했다. 어렸을 적에는 체력이 저질이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산행은 고행과도 같았다. 드디어, 겨우겨우, 기진맥진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 올라 저 멀리 있는 우리 동네를 바라보았다. 14인치 모니터 속 화면보다 더 넓은 공간의 풍경을 즐겼다. 엄마가 무조건 정상까지 가자고 했던 건, 장산 꼭대기 흐드러진 갈대밭을 꼭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함께 했던 남동생과 엄마, 그렇게 우리는 자주 오자는 약속을 나누었다.


천근만근과 같은 무거운 발걸음은 이젠 가벼운 발걸음으로 바뀌었다. 내려오는 길에 엄마와 남동생과 함께 산 중턱에 있는 작은 식당에 들려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때 내 어깨에 손가락만한 불행이 피어났다.


“엄마! 어깨에 뭐가 생겼어!”

산에서 내려오고 집에 돌아왔다. 어깨에서 생겼던 물집이 팔뚝에 하나, 팔목에 하나, 그러더니 손등에 하나. 점차 손등까지 내려오며 물집이 울룩불룩 솟는 것이 알 수 없는 외계 증상 같아 무서웠다. 그러곤 사라졌다. 왜때문에 물집이 생겼는지 나와 엄마는 알지 못했고, 그 뒤로 나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알레르기를 반복했다.


처음엔 그 날 먹은 음식들을 모조리 의심했었다. 두부? 잔치국수? 아니면 물? 만약 음식 때문이었다면, 온몸에 알레르기가 생겨야 했다. 하지만 정작 알레르기가 나는 부위는 정수리, 손등, 귀, 코... 그리고 알레르기가 난 곳과 나지 않은 곳의 명확한 경계선. 어린 나는 악몽 같은 알레르기를 반복하며 알레르기의 원인이 햇빛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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