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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공개 Jan 21. 2021

햇빛 알레르기의 시작(2)

햇빛 알레르기면 어때?

같은 해, 학교에서 금련산으로 소풍을 갔었다. 그날의 하늘이 흐렸는지 맑았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오랜 기억이라 잊혀진 걸지도, 아님 너무 평범할 줄 알았던 일상이라 기억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작은 공원 광장에 일찌감치 도착해서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내 얼굴은 은근한 햇빛으로 익어가고 있었고, 담임 선생님 말에 따라 여기저기 이동하다 문득 내 코가 두근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코를 중심으로 점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나는 영락없는 술주정뱅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일단 잘 모르겠지만 집에 가야 할 것 같았다. 담임 선생님께 조퇴를 해도 되냐고 허락을 구하고, 종종걸음으로 소풍장소에서 빠져나왔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쪼끄만한 어린 애가 대낮에 술에 취한 채로 다니는 것처럼 보이겠지. 밖에서 붉은 얼굴로 걸어다니는 것 자체만으로도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여기가 어디쯤이지? 이름은 알지만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산에서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버스정류장을 향해 황급히 도망갔다. 걸어가면서 햇빛 알레르기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스마트 폰은 물론, 터치 폰도 없던 때였다.

주머니엔 300원뿐이었다. 300원을 초조하게 쥐곤 지나가는 버스의 안내판을 모조리 읽었다. 뭔가 익숙한 느낌의 버스가 있어 급한 마음에 일단 올라탔다. 200원. 초등학생 요금이었다. 마음을 졸이며 200원을 냈다. 자랑이지만, 엄청나게 어려 보이는 동안 외모덕분에 모자란 돈으로 무사히 집까지 올 수 있었다.


“엄마, 나 햇빛 알레르기 난 거 같아……”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에게 달려갔지만, 그동안 햇빛 알레르기는 이미 가라앉고 없었다.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때부터 바깥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 15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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