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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공개 Jan 25. 2021

햇빛, 마음의 상처

햇빛 알레르기면 어때?

나는 마냥 밝은 사람이 아니었다. 햇빛 알레르기를 앓으면서 스스로 옥죄고 우울해하며 끝없는 나락으로 몰아갔었다. 사소한 일상을 누릴 수 없어서 슬퍼하는 고통도 있었지만, 흔한 병이 아니라서 생기는 다른 사람들과의 오해와 혼자만의 망상들이 나를 괴롭혔다.


중학교 3학년 때 왕따를 당했던 적이 있었다. 친구들 사이에 생긴 오해로 따돌림이 시작되었고, 1년 동안 여러 일들이 있었다. 나를 따돌리는 애들은 나의 햇빛 알레르기를 그저 핑곗거리로 보았다. 체육시간이었다. 평소였으면 체육복을 입고 운동장에 나가 있었을 나였는데, 스탠드 그늘 밑에 앉아있는 날 보고는 그들은 불쾌한 표정들을 지었다. 아주 작은 한마디였다. 들릴 듯 말 듯한 수군거림이 아닌, 나를 향해 던지는 짜증 섞인 말이었다.


“쟈(쟤), 일부러 저러는 거 아니가?”


어린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잠자코 들었다. 그 친구의 표정, 눈빛, 입술, 억양 하나하나 되새기고 마음에 담았다. 햇빛 알레르기를 앓았던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번은 저 말을 듣지 않았을까?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말, 마음을 후벼 파냈던 그 한마디는 아직도 내 안에 쓰라리게 남아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남들에게 내가 햇빛 알레르기임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학교 입학 첫 해, 체육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모든 여학생들이 운동장으로 집합했다. 선후배들과 함께하는 첫 피구 연습시간이었다. 여학생회장은 카리스마가 넘치는 언니였다. 언니에게 내가 햇빛 알레르기임을 공개하고 피구를 못하겠다고 거절하기까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언니… 죄송한데 제가 햇빛 알레르기가 있어서…. 피구는 하기 힘들 것 같아요….”


내 말을 들은 언니의 첫 반응은 모두가 그렇듯, 햇빛 알레르기는 처음 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다음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응, 알았어. 쉬어.”


체육대회는 모두 참석해야 한다며 단호하게 거절할 거라 생각했지만, 단박에 피구 게임에 참가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나를 보는 주위 시선들은 달랐다. 아니, 내가 보는 주위 시선들은 달랐다. 중학교 3학년 때 그 사건 때문인지, 모두가 나를 ‘일부러 거짓말하는 애’라고 쳐다보는 듯하였다.


‘모두를 납득시키기 위해선 햇빛 알레르기가 나야만 해’

피구 연습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나를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속으로 욕하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햇빛 알레르기가 나야 한다고 스스로 되뇌며 나 자신을 옭아매었다. 조여 왔다.

모두가 체육대회를 위해 모여있는데 나 혼자만 기숙사로 돌아가는 것이 눈치가 보였다. 하늘이 흐리길래 일부러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피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대학교 캠퍼스에 앉아있던 건 중학생 시절의 나였다. 예상했던 대로 얼굴에 잔뜩 햇빛 알레르기가 났다. 터질 듯한 붓기였다. 아팠지만 행복했다.


‘이제는 모두가 내가 햇빛 알레르기라는 걸 믿겠지?’


내 얼굴을 보고 걱정하는 언니들과 동기들의 표정을 뒤로하고, 햇빛 알레르기를 인정받았다는 안도감에 젖어 나 자신을 망가트렸다.


햇빛 알레르기를 앓으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는 점점 멀어졌다. 당연했던 수순이었다. 집 근처나 카페에서 만나는 정도는 가능하지만, 같이 여행을 가거나 놀러 가자고 할 수 없었다. 아니,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고 아예 꿈조차 꾸지 않았다. 여행은 즐거워야 하는 데 여행의 시작부터 이미 상대방에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인생의 즐거움을 꿈꾸지 못하다 보니 모든 광경들이 나에게는 자괴감의 화살이었다. 물 깊은 계곡에서 해맑게 웃는 사진들, 해외에서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청춘들은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울적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나는 나 스스로를 구렁텅이로 몰아가고 있었다.


‘나도 할 수 있는데, 나도 더 잘 놀 수 있는데…’


구렁텅이의 깊은 곳에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슬픔이 힘들어 슬픔을 버티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생각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다들 모두가 하나쯤은 앓고 있는 병이라고. 위장이 약하거나, 피부가 약한 것처럼. 차라리 햇빛 알레르기 하나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실내에서는 무사하니까 됐다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처음으로 겪었던 햇빛 알레르기는 나에겐 화나고, 알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내가 아무리 부정하더라도 어차피 햇빛 알레르기는 영원히 함께 해야 하는 동반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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