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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공개 Feb 12. 2021

걱정해주니까 걱정이 되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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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문에 우리 가족들만 하는 단출한 명절 행사. 세배까지 끝내고 마침 작은 아빠에게 전화가 왔었다. 사촌동생이 삼수를 결정했다는 소식이었다. 전화는 하나에 말하는 사람이 다섯이려니 스피커폰에다가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다.

아빠 "그래, 삼수 고생하그래이. 니가 딱 1%만 열심히 하믄 노력한 만큼 딱 1% 더 점수가 잘 나오는거니까네 열심히 하고. 저번에는 느가 너무..."

엄마 "어휴, 길게 말하지 말아요. 그래, 어려운 결정 했다. 삼수라는 게 참 쉬운 일이 아니잖니.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을 거야. 건강 조심하고! 너네들도 한마디 해라"

언니 "삼수 축하해!" / 나 "고생해라!" / 동생 "파이팅!"

아빠 "그, 그리고 그 중국에서 보내온 선물 있다 아니가? 그 코로나는 절대 열어보지 말그래이"

엄마 "뭔 소리야 빨리 끊어요. 몸조심하고!"


아침을 먹고 난 뒤 설거지를 하는데, 문득 뒤에서 엄마가 한마디 말했다.

엄마 "삼수한다는데, 너무 하하호호 얘기했던 건 아닌가 모르겠다"

내심 밝은 분위기로 말을 했던 게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다.

나 "아니야 엄마. 그게 더 나을지도 몰라."

엄마 "왜?"


* * *

최근 나는 부서이동을 하게 되었다. 입사한 지 5년 만이었다. 회사 내 최고 선호부서에서 최악의 기피부서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말로만 듣던 악명 높은 부서였다. 거기 가면 휴직하거나 육아 휴직하거나 퇴사하거나 셋 중 하나만 있다더라-는 소문을 듣던 터였다. (어느 분께서는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때가 온다고도...)

별로 걱정하진 않고 있었다. 난 적응을 잘할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아무리 최악의 기피부서일지라도 그곳도 다 사람 사는 곳이거늘, 어디든 비슷하지 않을까? 여차하면 퇴사하고 글에 집중을 할까? 뭐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나의 인사발령 소식을 들은 지인들은 선임 후임을 막론하고 나에게 많은 위로를 해주었다. 지나가다 나와 눈을 마주친 모든 분들이 한마디 건넸다.

슬픈 얼굴로 "쌤 어떡해요..."

안타까운 목소리로 "힘내요..."

걱정하는 눈빛으로 "이팅..."

살다 살다 이렇게 힘내라는 말 많이 듣기는 처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잘 버틸 수 있을까? 예전처럼 또 힘들면 어쩌지...?'

긍정적이고 당당했던 마음에 조금씩 균열이 생겨났다. 걱정이 없었는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일에 대한 압박감, 스트레스가 일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무럭무럭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나에게 힘이 돼주었던 한마디는 이 말이었다.

"쌤이라면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잘 해왔잖아요."

수많은 걱정들보다 나를 향한 응원에 가장 힘이 났다.

* * *


나 "엄마, 나 저번 주에 엄청 힘든 부서로 인사발령 났었잖아"

엄마 "응"

나 "다들 걱정해주니까 오히려 걱정이 되더라구. 걱정도 옮더라. 걱정은 적당히만 하고, 믿고 응원해주는 게 더 좋은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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