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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크롬 Feb 06. 2020

여자친구(GFRIEND)의 세계관 교통정리

'교차로(Crossroads)' 리뷰



출처 :'A Tale of the Glass Bead : Previous Story'



  걸그룹 여자친구(GFRIEND)가 타이틀곡 '교차로(Crossroads)'로 컴백했다. 이번에 눈여겨보아야 할 사실은 빅히트가 여자친구의 소속사인 쏘스뮤직을 인수한 이후 나온 첫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는 빅히트의 색이 덧입혀진, 특히 세계관이 강조된 여자친구에 대한 궁금증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역시나 여자친구는 컴백 전 티저 영상인 'A Tale of the Glass Bead : Previous Story'를 통해 지금까지의 세계관에 질서를 부여했고, 그것을 토대로 '교차로'에 새로운 갈등을 집어넣었다. 이렇게 구체적인 스토리텔링이 존재하는 형태로 세계관의 윤곽을 드러낸 것은 메이저 걸그룹들 중에서 여자친구가 처음일 듯싶다.


  놀라운 건 위 티저 영상이 지금까지의 거의 모든 타이틀곡을 아우르는 '교통정리'를 해냈다는 점이다. 영상은 먼저 학교 3부작 하에서 멤버 모두 화목했던 과거와 '귀를 기울이면'의 호수 씬으로부터 멤버들이 능력(?)을 획득했던 시절을 회고한다. 그리고 'FINGERTIP'에서 그 능력의 실체가 드러나고, '밤'과 '해야'를 지나 은하의 시점으로 각자의 능력을 질투하는 멤버들 간의 갈등이 고조됐다는 사실을 알리며 마무리된다("우리의 능력은 과연 선물이기만 한 걸까?"). 사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만큼 기획팀의 철저한 준비가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이를 발판으로 '교차로'에 놓인 은하가 유한 번의 시간 여행을 통해 멤버들의 갈등을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 이번 뮤직비디오의 주 내용이다. 결국 1차원적인 레퍼토리 그 이상을 원하는 팬들에게 '교차로'는 큰 선물임에 틀림없다. '교통정리'가 끝났으면 이제 세계관을 마음껏 풀어나가면 된다. 음반은 물론 콘서트, 굿즈까지 여자친구는 앞으로 정해진 흐름 위에서 수월하게 콘셉트를 이어나갈 수 있다.




출처 : '교차로 (Crossroads)' MV



  하지만 팬덤 밖의 입장은 어떨까? 소위 '머글'들은 '교차로'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나서 고개만 갸우뚱할 것이다. 퍼포먼스 씬 하나 없는 '교차로'는 그들에게 딱히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지난 뮤직비디오를 다시 훑어보며 세계관 해석에 매달릴 리도 없다. 게다가 '교차로'가 감각적인 비주얼을 제공하지도 않기에 라이트 유저들은 뮤직비디오에서 불친절함만을 느낄 것이다. 비(非) 케이팝 팬들에게 '입덕'의 문턱이 더 높아진 셈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음악이다. 아무리 세계관과 스토리텔링을 강화했다 한들 보이그룹이 아닌 걸그룹의 입장에서 음악을 소홀히 하는 건 도박이다. '교차로'는 발매 직후 멜론 10위권에 진입했지만 현재 30~40위 권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중이다. '교차로'의 탑 라인은 썩 인상 깊지 않으며, 들을수록 '밤'과 '해야'의 레퍼토리만 머릿속에 남을 뿐이다. 이런 상황 하에서 여자친구의 이번 컴백이 무조건 성공적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나는 방탄소년단으로부터 트렌드로 자리 잡은 세계관 설정이 케이팝 씬에서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좋은 음악과 명확한 콘셉트 빌딩이 뒷받쳐주지 않는 한, 세계관은 '소꿉놀이'에 불과하다. 특히 세계관을 거의 소비하지 않는, 불확실하고 넓은 계층을 타게팅하는 걸그룹은 더더욱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교차로'는 여자친구의 공고한 팬덤을 담보로 행해진 리스크가 큰 실험에 가깝다.


  어쩌면 이런 생각도 든다. 좁아지는 댄스 음악의 입지와 갈수록 매니악해지는 케이팝 팬덤이 위와 같은 음악 외적인 부분에 치중한 결과물을 내놓도록 한 것이 아니겠냐고. 걸그룹의 경우 차트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초동 기록은 매번 깨진다. 즉 걸그룹 시장의 소비 행태가 보이그룹의 그것과 비슷해져 간다. 우리는 '교차로'를 데뷔 5년 차인 여자친구가 과감히 팬덤에게 집중하려는 전략으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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