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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크롬 Feb 15. 2020

고전 읽기의 효율

이걸 다 읽겠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들어가자.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마케팅, 유명인들의 말처럼 고전을 읽으면 이득인가? 여기서 말하는 고전이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카프카의 변신과 같은 소설, 그리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과 같은 철학 문헌을 말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고전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며 떠들어대고, 그걸 지켜보는 우리는 전쟁 같은 세상에서 손자병법이라도 얻을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고전을 찾는다. 그런데 책읽기는 완독하는 데 오래 걸릴뿐더러 습관화하기도 어렵다. 즉, 다소 기회비용이 큰 활동이다. 고전이 과연 그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고전의 아이디어와 사상은 음식으로 치면 날 것의 재료에 가깝다. 우리가 현재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학문, 문화, 정치의 모습이 바로 고전으로부터 완성된 레시피이다. 단적으로 우리가 콘텐츠 상에서 마주치는 플롯과 캐릭터의 이름, 형태부터 민주주의와 경제 시스템의 개념까지 그 태초의 형태는 고전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가령 존 로크의 <통치론>으로부터 유래한 소유권 개념이 미국 자본주의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즉, 이 세계의 많은 부분은 고전이란 토양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위대한' 고전을 읽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그렇다면 당장 마트에 가서 생마늘과 고추, 양파, 당근을 맛있게 씹어 먹어보라. 생식이 건강하다지만, 아무래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음식 맛을 잘 느끼기 위해 재료까지 파고들어서 분석할 이유는 없다. 요컨대, 맛을 느끼는 것에 있어 효율이 떨어진다. 고전도 마찬가지이다. 만약에 당신이 애독가가 아니라면, 서점에 가서 적당한 철학 원전을 찾아서 읽어 보라. 얼마 뒤 당신은 손에 책이 아니라 베개 혹은 라면 받침대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따라서 뇌의 고통을 즐기는 마조히스트가 아닌 이상 고전을 나이브한 상태로 읽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예상했겠지만, 고전은 가이드(<철학과 굴뚝청소부> 같은)가 필요하다. 철학의 경우 철학사(역사, 사조, 인물)를 개괄적으로 다루거나 철학의 주요 문제들(형이상학, 도덕, 논리 등)에 맞추어서 먼저 넓은 방향에서 접근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 이후 1차 문헌을 건드려야 이해도 되고 능동적인 비판과 응용이 가능해진다. 유연한 사고와 통찰력을 획득하려고 고전을 읽는 건데 학교 수업처럼 고개만 끄덕거리다 책장을 덮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소설의 경우는 조금 낫다. 많은 책들이 고전 문학에 대한 가이드를 제공하고 독자는 어려운 개념보다 스토리에 더 중점을 둬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그렇다고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을 택하는 실수를 하지 마시길).


  비전공자 덕후인 내 경험을 몇 개 풀어놓자면, 솔직히 원문만을 읽어서 큰 이득을 보진 않았다. 독해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번역투에 머리가 아프기도 하며, 한두 번 읽어서 이해될 수 있는 개념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이드 서적을 만나는 순간, 죽어있던 기억은 숨을 쉬게 된다. 어렵기만 했던 부분이 잘 정리되고 퍼즐처럼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있다. 가이드 서적은 선택과 집중을 가능하게 한다. 물론 가이드 서적만 읽어서도 좋을 건 없다. 많은 내용이 압축된 가이드 서적은 다량의 개념을 주입하기에 머릿속에서 곱씹어 볼 시간을 놓치고,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 뭐든 적당히가 중요한 법이다. 효율은 바로 그 지점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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