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크롬 Apr 28. 2020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더 나은 이유

존 스튜어트 밀 <공리주의> 리뷰

  1. 공리주의(utilitarianism)를 직접 배운 사람은 많지 않더라도, '인부 5명을 앞에 두고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의 핸들을 돌려 1명의 사람을 희생시킬 것이냐'를  묻는 트롤리 딜레마(trolley dilemma), 혹은 한 명만 지하실에 가두고 일만 시킨 뒤 나머지 가족은 놀고먹는 심즈 플레이에 대해서는 한 번쯤 들어봤으리라 생각한다. 위 사례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공리주의는 사회 전체의 효용과 최대 행복을 기본 원리로 한다. 이는 쾌락(퇴폐적인 의미가 아님)을 최대화하고 불행을 최소화하는 두 가지 목적을 포함한다. 공리주의라는 트렌드는 18-19세기 영국에서 힘을 얻어 정치, 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파놉티콘으로 유명한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은 공리주의를 급진적인 형태로 제시했고, 그 후계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이를 온건하게 다듬는 역할을 했다.




  2. 밀의 저서 <공리주의>는 앞서 말한 효용 원리가 어떻게 도덕에서 '제1원리'로 작용할 수 있는지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공리주의가 어떻게 실용적인 방법론이 되는 동시에 기존 도덕과 정의 개념에 대해 크게 모순되지 않고 부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각 인간이 행복을 갈망하는 건 자명하다. 여기서 이기주의의 가능성은 사회 전체의 행복을 제1원리로 둔다는 조건 하에서 부분적으로 제한된다(외적 구속력). 따라서 밀이 강조하듯 개인의 행복 추구와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라'라는 격언은 공리주의 하에서  자연스럽게 양립한다. 그리고 공리주의의 또다른 특징으로 동기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 있다. 가령 내 몸을 희생해서 남을 도와주는 건 도덕적으로 옳다. 집단 효용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양심에 따라서 움직였는지, 혹은 관심을 받고 싶어서 행동하는지는 상관없다. 더 나아가 내 희생이 효용을 증진시키지 못했다면 그건 쓸모없는 행동이다. 즉, 밀의 공리주의는 철저히 결과 중심적이다.



 3.  이는 의무를 중시하는 칸트 윤리학과 충돌한다. 밀은 <공리주의>에서 애매모호한 보편성에 호소하는, '당신의 행위 규범이 다른 모든 이성적 존재들에게 하나의 법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행동하라'는 칸트 윤리학을 비판한다. 왜냐하면 이성적인 존재가 위의 법칙에 따라 비이성적인 행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논리적이라는 사실을 이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내 친구를 죽이려고 위치를 묻는 살인자에게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공리주의와 달리 칸트 윤리학은 지나치게 절대적(덜 실용적)이고 명확한 기준의 역할을 잘 해내지 못하는 셈이다.



  4. 그렇다고 공리주의가 만능은 아니다. 앞서 말한 트롤리 딜레마의 경우, 공리주의 원칙에 따른다면 핸들을 돌려 억울한 인부 1명을 죽일 수밖에 없다. 왠지 전제정치를 정당화시킨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러셀은 인간이 제각기 자신의 행복을 욕구한다는 공리주의의 기본 전제를 지적한다. 그는 우리가 항상 쾌락을 따라서 무언가를 욕구하지 않으며, 쾌락은 그저 욕구의 결과일 뿐이라고 말한다. 즉, 쾌락과 고통이 계산되기 전에 욕구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또한 욕구와 쾌락의 관계가 일관성을 갖는 것도 아니다. 나와 관계없는 스포츠 경기의 한 쪽 팀을 응원하거나(쾌락이 되지 않음에도 욕구), 마조히스트에게는 물리적 고통이 쾌락이 된다(고통임에도 욕구). 이런 측면에서 공리주의 또한 칸트 윤리학 수준의 논리적 일관성을 갖는 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5.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공리주의>는 문체와 두께 면에서 나름 친절한 고전이다. 그러나 공리주의의 핵심 개념이 방대하지 않음에도 저자인 밀은 이를 구체화시키기 위해 나머지 분량을 전부 투자하므로 고전 특유의 복잡함과 지루함이 아예 없다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공리주의 사상의 전반적인 역사와 개요를 독서 전후로 짚어주면 좋을 것 같다. 나의 경우 2차 문헌으로 <러셀 서양철학사>를 많이 참고했다. 트롤리 딜레마에 관해서라면 유튜브에 떠돌아다니는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수업 시청을 추천한다.

작가의 이전글 고전 읽기의 효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