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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크롬 Apr 28. 2020

정말 악법도 법인가?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 크리톤 · 파이돈 · 향연> 리뷰

  1. 문예출판사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이하 <변명>)은 <크리톤>, <파이돈>, <향연>을 포함하여 4개의 대화편을 다룬다. <변명>은 소크라테스가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신을 믿지 않은 죄'로 고소당한 뒤 법정에서 한 변론이고, <크리톤>은 감옥에 갇힌 소크라테스를 탈출시키려는 크리톤과 이를 거절하고 사형을 받아들이는 소크라테스의 대화이다. 그리고 <파이돈>은 사형 하루 직전 동안 소크라테스가 제자들 앞에서 죽음과 철학자의 자세에 관하여 고찰하는 내용이고, <향연>은 소크라테스가 젊었던 시절 아카톤의 연회에 참석하여, 초대받은 이들과 함께 에로스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주고받는 대화이다. 



  2. 특이한 건 소크라테스가 <변명>에서는 재판관들을 깎아내리고 당당한 태도를 보이다가 사형을 받았는데 <크리톤>에서는 벌을 달게 받으려는 태도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는 본인의 죽음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하는 행동이다. 자신의 죄가 성립되지 않음에 대해 하나하나 논박하다가, 나중에는 뒤늦게 부당한 판결을 내린 국가(아테네)에 미련 없이 따라야 한다니 웃기지 않은가? 심지어 감옥을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3. 소크라테스는 탈출을 권유하는 크리톤에게 말한다. 국가는 나의 아버지이고 시민으로의 혜택을 받아왔기에 어떤 경우에도 복종해야 하며, 내가 아테네를 도망친다면 나의 죄를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기에 여기 남는 것이라고. 그리고 철학자는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결국 <파이돈>에서는 영혼 불멸과 같은 형이상학적 논증을 통해 저승에서의 행복이 보장될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내고, 제자들 앞에서 독배를 마신다. 어쨌든 소크라테스는 너무 고결한 탓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 셈이다.



  4. 나는 고등학생 때, 정당하지 않은 학교의 압제에 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곤 했었다. 그 예로 빡빡이를 강요하는 두발 규정에 대한 완화를 요구했는데, 갓 들어온 신입생이 머리를 밀기 싫다고 따지니 선생님들이 가만 놔둘 리가 없었다. 결국 나는 학기 초부터 학생부를 들락날락하게 되었고, 여기서 들은 말 중에 하나가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다'였다. 즉, 두발 규칙이 합리적이지 않아도 학교의 룰이니 일단 따르라는 것이다.



  5. 하지만 이 말은 실제로 소크라테스가 한 말인지 1차 문헌에서 확인되지 않으며, 위 책에서 알 수 있듯이 소크라테스는 스스로의 고결함과 당당함을 주장하기 위해 법의 권위에 맞서지 않고 처벌을 선택한 것 뿐이었다. 그럼에도 위의 두발자유 사건처럼 위 말을 악용하여 비합리적인 관행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군대, 직장 등 권위주의가 고개를 들 수 있는 곳이라면 이는 어디서든 일어난다. 자신의 행동이 꼰대들의 주장에 보탬이 되고 있다니, 소크라테스가 땅을 칠 노릇이다.



  6.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악법이라도 따라야 했던 이유, 즉 소크라테스가 국가와 법을 거역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은 이것들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충분히 반박될 수 있다. 홉스와 로크, 루소 같은 계몽주의의 입장에서는 주권자가 공동체의 이익에 반하는 법을 강요할 경우, 이를 폐기할 수 있다는 견해를 보일 것이다. 따라서 시민들에게 해가 되는 악법은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는 소크라테스의 경우처럼 '악법'이 다소 명확하게 악하면서 해를 끼진다고 규정될 수 있을 경우(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제한)에만 해당된다. 거대한 사회의 복잡성을 껴안은 지금 세계에서 '악법'이 무엇인지 판단하기는 간단치 않다.



  7.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은 위 대화편에서 두드러지는 또 다른 특징이다. 소크라테스는 어떤 주장을 할 때,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논리적 귀결을 이끌어낸다. 가령 이런 식이다. "떡볶이와 마라탕은 매운 것이지?", "맵다는 성질은 매운 음식 모두에게 존재하겠지?", "하지만 맵다는 것 관념 자체는 매운 음식과 다르겠지?" 등등. 물론 지금의 입장에서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보이진 않다(배중률을 쉽게 사용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논의를 진행하면서 반박에 항상 열려 있으며, 성실하면서도 기교적인 탄탄함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8. <향연>에서는 신화도 많이 인용되는 등 여러모로 독특한 면이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나이 든 남자가 어린 소년과 동성애 관계를 갖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평가받았는데, 이는 <향연>에 가감 없이 드러난다. 에로스(사랑)에 대한 분석이 주 내용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아름다움, 선, 행복과 같은 가치들이 함께 논의되며, 이것들은 우리가 진정한 사랑을 조감하기 위한 요소들로 작용한다. 재미있는 건 이게 모두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철학자들의 술자리는 생각보다 유쾌(?)하다.



  9.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내용을 제외하면, 위 대화편들은 철학책이기 이전에 흥미로운 이야기책이다. 어쩌면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위인전이라고도 부를 수도 있겠다. 확실히 소크라테스의 대쪽같은 태도는 부분적으로 본받을 만하다.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지성을 위해 헌신하기는 민주주의가 발달한 지금도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저자인 플라톤은 아테네의 불완전한 정치적 상황에서 죽어간 소크라테스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그는 소크라테스로부터 철인왕의 모습을 그려내고, 당시 아테네 이상으로 더 위대한 '국가'를 기획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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