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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크롬 Apr 28. 2020

인공지능은 과연 디스토피아를 불러올까?

이지성 <에이트> 리뷰

  1. <에이트>는 딱 잘라서 우리에게 말한다. 당신의 직업은 인공지능에게 대체된다고. 이는 단순노동일수록 더 심하고 전문직조차도 예외가 아니라고. 따라서 인공지능이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을 강화시켜야 한다. 바로 공감 능력과 창의력이다. 세계 유수의 학교들은 이미 '인공지능을 지배하는 인간'을 기르기 위한 교육을 시작했다. 우리의 태도와 생각을 4차 산업혁명에 맞게 과감히 바꾸지 않는다면 미래 한국인의 99퍼센트는 '프레카리아트', 즉 '인공지능에게 지배를 받는 인간'으로 전락할 것이다.



  2. 그렇다면 어떻게 인공지능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저자는 상기한 공감 능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8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즉 우리는 디지털 차단, 자유와 성취를 강조한 교육, 지식 자체(Knowing)가 아닌 혁신(Doing)과 소통(Being)을 이끌어내는 공부, 크리에이티브적인 태도와 생각의 전환(디자인 씽킹), 철학, 문학과 예술과의 융합, 문화인류학적 여행, 그리고 봉사를 통해 인공지능에게 대체되지 않는 나를 만들 수 있다. 여기까지가 <에이트>가 제시한 문제 제기와 처방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대두되는 인문학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3. 하지만 <에이트>는 인공지능의 활약상만을 강조해서 보여주지 막상 인공지능이 무엇인지 제대로 다루지는 않는다. 덕분에 디스토피아적인 미래가 쉽게 도출된다. 저자는 인간과 구분하기 어려운 모습의 '강한 인공지능'의 출현을 의심치 않는 듯하다. 현재 인공지능 기술은 '약한 인공지능'으로, 데이터 처리 기술에 힘입은 통계 기계에 가깝다. 약한 인공지능에는 구조적으로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또 어떤 데이터를 학습하느냐에 따라서 성능과 출력 결과가 달라진다. 따라서 인공지능을 운영하는 사람과 따로 독립해서 무언가를 '지능적'으로 행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굉장히 '지능적'으로 보이는 기계일 뿐이다.



  4. 약 조제, 신체 진단, 행정과 같은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우수할 거라는 사실은 나 또한 동의한다. 하지만 법률 시장에서 판검사를 갈아치울 것이라는 의견에는 반대한다. 전산화된 판례와 법률 용어를 효율적으로 찾아내는 데에는 도움을 줄지 모르겠지만, 법적 판단이라는 것은 단순히 데이터로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 <에이트>는 인공지능이 철학과 윤리를 학습하기 어렵다는 적을 지적한다. 하지만 법은 그 어떤 분야보다 철학과 윤리와 떼어놓을 수 없는 곳이 아니던가? 인간처럼 사고할 수 있다는 '강한 인공지능'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변호사와 판검사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5. 철학이 인공지능 시대에서 또 다른 역량으로 평가받는 것도 백 퍼센트 동의하지 못하겠다. 앞서 강조한 공감 능력, 창의력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느낌도 없다. 차라리 수학과 논리를 더 중점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위 책은 철학 공부를 어떻게 하라는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는다. 철학은 자세히 공부하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가볍게 공부하면 비판적 사고를 얻기가 힘들다. 철학 자체보다는 지혜와 통찰력이 우러나올 때까지 오랜 시간 고민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수단으로서 배우면 그만큼 재미없는 과목이 철학이다.



  6. 크리에이티브함을 강조한 교육이 인간 모두에게 유효할 거라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나는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은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교육이 아니라 습관과 성향의 문제이다. 세상에 무한한 호기심을 가지고 내면적으로 사색을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머리를 쓰기 싫어하는 것이 인간의 현실이다. 책에서는 특수한 교육을 통해 창의적인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을 지배하는 계급이 양성된다고 하는데 나는 그들이 어떤 구체적인 모습으로 인공지능을 '지배'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낼지 감이 전혀 잡히지 않는다.



  7. 저자가 강조한 공감 능력과 창의력이 인공지능에게 침해당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특히 강한 인공지능의 경우 이 능력들도 인간만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서 공감 능력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이 겪는 문제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 발견은 혁신과 발명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문제 발견과 해결 과정에서 더 뛰어날 때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상품 추천이 있다. 인공지능은 나도 모르는 취향의 음악을 찾아주거나 필요한 물건을 추천해 줄 수 있다. 인간이 간과하기 쉬운 부분을 인공지능은 기술적으로 '공감'해주고 문제를 해결한다. 창의력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지금도 인공지능은 음악과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다. 데이터 기반 창작이기에 완전히 '독창적'인 창작은 어려울 수 있어도 보통 인간의 수준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는다.



  8. 인공지능이 세상을 바꾸는 중이라는 건 분명하다. 그리고 정말로 많은 직업들이 사라질 위기를 맞을 것이다. 하지만 무비판적인 정보에 혹하지 않고 한계를 받아들이는 자세도 필요하다. 비슷한 맥락으로 정재승 교수가 <열두 발자국>에서 지적한 바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은 너무 이르게 등장한 말이고, 우리는 한 시대가 흐르고 난 뒤에야 지금이 4차 산업혁명인지를 알 수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아직 스카이넷이 등장하긴 이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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