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크롬 Apr 28. 2020

에너지로 보는 또 다른 세계관

제레미 리프킨 <엔트로피> 리뷰

  1. 엔트로피를 논하려면 먼저 열역학 내 두 개의 법칙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며(제1법칙), 엔트로피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제2법칙)." 1법칙은 우주의 에너지를 창조하거나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제2법칙의 '엔트로피'란 무엇인가? 이는 시스템 내에 존재하는 무용한 에너지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유용한 에너지는 계속해서 고갈된다는 것이 열역학 제2법칙이다. 가령 석유만 하더라도 무한정 채굴할 수 없고, 재활용할 수도 없다. 석유가 연소되면 대기로 흩뿌려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용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정제하는 기술이 등장한다면 어떨까? 하지만 정제하는데 또 다른 에너지가 투입되므로 결국 전체 계 내부에서 엔트로피의 양을 줄일 수는 없다('맥스웰의 악마' 참고). 그저 속도만 늦출 수 있을 뿐이다.


  2. 열역학만 주구장창 논하다 끝났다면 <엔트로피>는 절대로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했겠지만, 다행히도 이 책은 알러지를 유발하는 과학 교과서가 아니다. <엔트로피>는 열역학 법칙에 기반한 하나의 세계관을 제시한다. 즉 특정 시대의 에너지 사용이 그 시대의 세계관을 반영하며, 인간은 나무와 석탄 등을 거쳐 지금에 에너지 소비 구조에 이르렀다. 그리고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미래에는 유용한 에너지가 모두 고갈되고 결국 평형과 무의 상태에 봉착한다. 특히 우리는 현재 엔트로피의 양을 가속화시키는 산업 사회에서 살고 있다. 책에 따르면 엔트로피 세계관은 비단 에너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경제, 식량, 도시, 교육, 보건 등 복잡하고 비대해진 시스템이라면 엔트로피로 인한 부작용에 몸살을 앓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수송에 있어서 편리함을 가져왔지만, 그로 인한 연료 소비, 유지보수, 주차 공간 차지, 교통 시스템 정비, 세금 등은 새로운 형태의 '무질서'를 낳는다. 환경오염과 교통사고는 말할 것도 없다. 이렇듯 <엔트로피>는 위 법칙에 입각하여 산업 사회의 진보는 그로부터 발생한 수많은 비용과 무질서를 밟고 이룩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물질적 풍요는 종말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3. 결국 우리는 회의주의적인 결론을 피하지 못할 것인가? 고에너지 의존적인 기존 삶을 전면 수정하여 엔트로피 흐름을 늦추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보인다. 제레미 리프킨은 태양열 에너지 기반의 저에너지 사회를 예견한다. 그는 우리의 사고방식과 교육, 그리고 종교까지 이에 맞춰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을 착취하는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벗어나고, 인생의 의미를 찾는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집중하며, 자연의 질서를 돌보고 보전하는 교리를 기존 신학 이론과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리프킨은 '사랑'을 강조한다. "사랑은 전 우주적 생성과정이 궁극적 선이라는 확신이며, 자연의 리듬에 모든 것을 아무 조건 없이 내맡긴다는 선언"이다. 개인이 후손을 위해 자원을 보전하고 자연의 리듬을 존중하려 노력하는 것이 바로 사랑인 것이다.


  4. 현재 <엔트로피>가 출간된 지 40년이 지났다. 우리는 여전히 신재생 에너지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 태양열 에너지는 효율이 떨어지고, 전체 에너지 대비 신재생 에너지의 비율은 여전히 낮으며, 탈원전은 시기상조이다. 물론 <엔트로피>에서 우려하던 만큼 당장 디스토피아적으로 심각한 에너지 문제를 겪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환경 차원의 문제 인식만큼은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석유는 약 40년 뒤에 고갈 위기를 맞을 것이며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문제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소비 자체를 줄이자는 리프킨이 썩 만족할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인간은 나름대로 에너지 위기에 맞서는 중이긴 하다. 이제 전기차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는 것이 그 대표적 예다.


  5. 사실 리프킨이 비판한, 기술 진보를 향한 낙관주의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 40년 동안 과학기술이 괄목할 만한 성취를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그중 의료, 무인자동차와 같은 분야는 리프킨이 지적한 엔트로피 문제에 대해 충분히 반박할 만하다. 평균 수명은 늘어나고, 교통과 관련된 부가적 비용들은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인간의 부정확함이 야기하는 무질서는 인공지능의 발전이 기다리고 있다. 따라서 기술 발전이 엔트로피 증가를 무조건 가속화한다는 주장은 좀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6. <엔트로피>는 거대한 정합적 체제로 현실을 해석하려는 만큼, 디테일한 부분에서 논리적인 비약이 몇 군데 보인다. 가령 소 한 마리로 밭을 가는 농부의 효율이 기계화된 대형 농장보다 높다는 부분에서는, 수치적으로는 그렇다 쳐도 단위 당 생산 시간이 비약적으로 압축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그리고 교육 부분에서는 고도화되고 추상적으로 변한 인간의 정신활동이 무질서를 창출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초기 인류의 본능적 사고와 행동이 환경피해를 덜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인과관계가 애매하고, 낭만주의적 예찬에 가까워 보인다. 초기 인류는 환경을 개척할 수단이 우연히 없었을 뿐이지 이성이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무정부상태와 전쟁, 혁명의 광기가 본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엔트로피 세계관은 흥미롭지만 적용되기 어려운 부분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특히 내가 몸담으려는 문화 · 엔터테인먼트 분야야말로 에너지 소모의 극치를 달리기에 엔트로피 세계관 하에서 가장 지양되어야 할 영역이 될 것이다. 여기서 질문. 제레미 리프킨은 방탄소년단을 어떻게 평가할까?

작가의 이전글 인공지능은 과연 디스토피아를 불러올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