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자크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리뷰
1. 현재 우리가 불평등과 정의에 관해 많은 문제를 겪는 것처럼, 과거 또한 더하면 더했지 예외는 아니었다.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사회에 만연한 정치,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책임을 발달한 문명에 돌리고, 아득한 옛날의 자유롭고 독립적인 '자연인'을 예찬했다. 그렇다면 자연인들은 문명인과 어떤 부분에서,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차이가 있을까?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역사적 사고 실험(가설)을 통해 불평등이 발생하게 된 과정을 추적해나간다. 루소는 인간의 불평등을 타고난 신체 조건으로 대표되는 자연적 불평등과 사회가 발생함으로써 생기는 정치적 불평등으로 구분하는데, 후자가 바로 그가 논하는 지점이다.
2. 루소가 소개한, 순수한 미개인(자연인)이 불행한 문명인으로 변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처음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초기 자연상태가 있었다. 인간끼리의 교류가 없고, 가족 개념조차 없었던 시기이다. 그리고 루소가 이상적으로 여겼던 초기 원시사회로 이어진다. 이는 원시의 무위는 남아 있지만 공동체 생활로 인해 이기심이 발생하기 시작한 중간 단계의 시기이다. 그리고 인간들은 이제 농업과 야금술의 발달과 마주한다. 농업은 소유권 개념을, 야금술은 전쟁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가족제도의 정착으로 사회는 더욱 복잡해지고 권력에 대한 이해관계가 발생하면서 인간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체를 형성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즉 계급의 분화가 일어나고, 관습적으로 굳어지는 과정을 거쳐 정치적 불평등으로 이어진 것이다. 부자와 빈자 관계로부터 시작된 불평등은 강자와 약자 관계를 지나 주인과 노예 관계로 확립된다.
3. 여기서 핵심은 인간의 불행이 모조리 정치 · 경제적 원인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심리 상태에도 영향을 받았다는 데에 있다. 미개인이 순수했던 이유는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복잡한 정념, 권력관계와 마주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급자족하고 누구에게도 예속당하지 않는다. 미개인에게는 깊은 생각을 하지 않기에 선악의 개념도 없다(이는 전쟁 상태와 타고난 악을 강조한 홉스와 반대되는 부분이다). 나아가 자연 상태의 인간은 신체적으로도 건강하며, 사회 속에서 살지 않으므로 전염병에 걸릴 위협도 없는, 즉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는 존재이다.
4. 반대로 문명인들은 사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법은 물론이고 생활에서까지 구속받기 시작했다. 타인이 존재하니 도덕과 예의범절이 필요해졌고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을 겪게 되었다. 이 흐름 속에서 자연 상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인위적인 감정이 발생한다. 루소에 따르면 "미개인은 자기 자신 속에서 살고 있는데, 사회인은 언제나 자기 밖에 존재하며 타인의 의견 속에서만 살아간다." 문명인들은 타인의 호의적 평가와 존경의 가치를 알게 되면서 높은 지위와 좋은 평판에 집착하게 된다. 이는 결국 자기편애, 이기심이라는 감정으로 귀결된다. 자연의 순수성은 이런 식으로 사라진다.
5. 문명사회의 건강하지 못한 부분을 간파한 루소의 문제 제기는 지금도 유효하며, 분명히 의미가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작성된 게 아닌, 철학적 사고 실험이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뇌피셜로 보아야 마땅하다. 즉, 순수한 미개인의 삶이 문명인의 삶보다 나은지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이다. 높은 영아 사망률, 자연재해, 기본적 위생 상태를 컨트롤할 수 없는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진정 행복했을까? 무조건 yes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개인이라도 물리적 고통을 무시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특히 현대 사회를 기준으로 보면 문명의 진보를 통째로 부정하고 자연인을 예찬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진보의 혜택과 대가를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 균형 잡힌 시각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TV 속 <나는 자연인이다>의 힐링은 문명의 혜택을 전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