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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크롬 Apr 30. 2020

콘텐츠 취급주의 설명서

바라트 아난드 <콘텐츠의 미래> 리뷰

  1. 뉴스, 광고, 방송, 엔터테인먼트 등의 무형의 디지털 서비스를 일컫는 콘텐츠란 놈은 다루기가 참 까다롭다. 기술 혁신에 따라 시장이 순식간에 뒤집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트렌드는 계속 변화하며, 그 파급력의 역학관계를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한 마디로 콘텐츠 산업에서는 (경영 쪽이 대개 그렇듯) 명쾌한 룰이 없다. 이렇게 걱정하는 와중에도 어느 기업은 날개 돋친 듯 성장하고 어느 기업은 스멀스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는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성장을 경험했고, 네이버 TV가 손가락만 빠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공룡 같았던 페이스북이 휘청거릴 줄은 누가 알았으랴. 20, 30대의 '갬성'을 사로잡았던 인스타그램 또한 틱톡의 도전에 직면했다. 놀랍게도 이 모든 경과가 10년 내에 벌어진 일들이다. 그렇다면 복잡다단한 콘텐츠 산업 내에서 우리가 참고할 만한 최소한의 지침은 어떤 것이 있을까?



  2. <콘텐츠의 미래>는 제품 자체의 질이 아니라 '연결'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이 '연결'이란 개념은 상당히 포괄적이다. 책은 세 가지 연결 관계를 제시한다. 바로 '사용자 연결 관계', '제품 연결 관계', '기능적 연결 관계'이다. 먼저 사용자 연결 관계는 쓰는 사람이 많을수록 플랫폼의 가치가 올라간다는 개념이다. 처음으로 PC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맥보다 마이크로소프트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업들은 사용자 네트워크 확보를 위해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 외에 위키피디아와 같이 사용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여 성공한 사례도 있다. 이렇듯 저자는 무엇을 어떻게 잘 제공할지가 아닌 사용자 간의 관계, 경험에 주목하라고 강조한다. 사실상 이익은 서비스 자체와 광고가 아닌 네트워크 효과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3. 제품 연결 관계는 쉽게 말해 보완재의 개념이다. CD와 콘서트, 면도기와 면도날이 그 예다. <콘텐츠의 미래>는 단일 콘텐츠에만 집중하면 기술의 발전과 트렌드의 변화가 위협적으로 다가오지만, 보완재 개념을 도입하면 새로운 수익 모델을 얻을 수 있을뿐더러 경쟁 분야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애플은 아이팟만 판매한 것이 아니라 아이튠즈라는 보완재를 적절히 이용한 한 사례이다. CD의 경우 mp3와 스트리밍 서비스, 해적판 등으로 인해 위기를 맞았으나 콘서트에 대한 수요와 가격 증가가 이를 상쇄하고도 남았다(지적재산권 보호가 실제로 비즈니스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나아가 종이 신문과 디지털 신문을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로 바라볼 수도 있다. 적절한 콘텐츠 배치로 두 플랫폼에서 각자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일명 업혀가기 전략인 '스필오버'를 통해 킬링 콘텐츠나 기존 브랜드에 흥행이 불확실한 서비스를 '연결'시키는 방법도 존재한다.



  4. 마지막으로 기능적 연결 관계가 있다. 이는 제품이 아닌 운영 측면에서의 연결 개념이다. 한 마디로 기업 운영에 있어 조직이 유기적이고, 서비스 실행에 있어 콘셉트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책은 대표적인 예로 잡지 '이코노미스트'를 소개한다. 이코노미스트는 빠르게 뉴스를 전달하거나 디지털 환경에 성급하게 대응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만의 일관된 목소리(집단으로 기사 생산)로 적절히 기사를 큐레이팅하고, 세련됨과 자기 현시를 중시하는 특정 계층의 독자를 타깃으로 삼았다. 그 결과 이코노미스트는 그들만의 색깔, 즉 콘셉트가 분명한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는 그들 조직 내부의 밀접하게 연관된 선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한편 다급해진 경쟁자는 콘텐츠가 아니라 운영 시스템을 모방, 분석해야 하므로 따라잡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즉, 기능적 연결 관계는 시스템의 독창성과 연관된 개념이라고 볼 수 있겠다.



  5. <콘텐츠의 미래>는 650페이지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에 걸맞게 위 세 가지 개념 말고도 다양한 전략과 사례를 소개한다. 후반부에는 급변하는 광고 시장과 온라인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이는 위 책이 콘텐츠를 특정 분야에 한정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다룬다는 뜻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사례는 많지 않다. 결과적으로는 산업에 대한 넓은 시야를 제공하기에, 나는 이 부분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문과 방송이라는 올드 미디어에 대한 내용이 주가 되는 탓에 1인 미디어와 SNS, 유튜브에 대해 집중적인 조명이 없었다는 것은 아쉽다. 급변하는 미디어 시장을 고려하더라도, 17년에 출간된 것치곤 최신 자료를 본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책이 워낙 다양한 사례를 'xx 연결 관계'라는 카테고리 안으로 묶으려다 보니 구성 상 중구난방한 경향이 있다. 특히 세 번째 챕터에서 나라별로 비즈니스 전략을 달리 세우는 것(로컬라이징)을 왜 기능적 연결 관계라는 개념 하에 두었는지 의문이 든다. 한 마디로 '케바케'인 상황이 너무 많아 일반 원리를 도출하기엔 비약이 있다는 것이다. 아마 경영 서적의 고질적인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네트워크는 물론이고 '킬링 콘텐츠' 운영이 핵심이 된 지금 시점에서 이미 <콘텐츠의 미래>에서 말하는 미래는 지나간 듯 보인다. 세상이 이렇게나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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