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러미 벤담 <파놉티콘> 리뷰
1. 제레미 벤담이 설계한 파놉티콘은 그저 그런 감옥이 아니다. 파놉티콘은 궁극적 목적이 오로지 효용에만 맞춰진 감옥계의 국밥이다. 파놉티콘의 구조는 원형 가장자리 배치된 수감실과 텅 빈 중앙에 놓인 감시탑으로 이루어져 있다. 감시탑의 관리자들은 각 방을 한눈에 볼 수 있지만, 수감자들은 감시탑에서 본인이 감시당하는 줄 알지 못한다. 이로써 적은 수의 관리자들로 감옥 전체를 관리할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수감자들은 탑의 사정을 알지 못해 감시의 사각지대는 줄어든다. 나아가 이러한 관계는 수감자들이 탑의 시선을 내면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감시받고 있지 않은 와중에도 감시받는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2. 건축적인 면에서만 특별했다면 파놉티콘은 역사에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파놉티콘의 핵심은 시스템 관리에 있다. 감옥은 세 가지 원칙을 따른다. 첫 번째는 고통 완화의 원칙이다. 수감자들에게 치명적인 신체적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엄격함의 원칙이다. 수감자가 죄 없는 사람들보다 더 좋은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경제성의 원칙이다. 관리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익과 손실 계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벤담이 구현하고자 한 유토피아적인 부분이 드러난다. 파놉티콘은 범죄자들에게 정의구현을 하는 곳이 아니라 그들을 효율적으로 교화시켜 사회에서 다시금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정화조 같은 곳이다. 벤담에게는 범죄자들이 어떤 존재인지보다는 석방 이후 그들이 어떻게 사회의 효용에 기여할지, 즉 결과론적이고 공리주의적인 접근이 더욱 중요했다.
3. 시스템의 디테일한 부분을 잠깐 살펴보자. 먼저 감옥의 관리는 계약에 의해 이루어진다. 자원봉사를 비롯한 고상한 동기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일에 대한 열정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계약자는 관리를 잘 할수록 연 단위의 인센티브를 받는다. 그리고 수감자들은 죄질과 성별에 따라 적절히 분류되며, 감옥 내의 범죄에 있어서 연대책임을 진다(벤담은 게임이론을 이해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이들의 생활은 규칙적이며, 동기부여적인 성격을 띤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노동에 쏟지만 열심히 일하면 석방 시 일종의 초과 수당을 받아갈 수 있다. 결정적으로 수감자들에게는 감옥 생활이 끝나면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수련생이 되어 누군가의 밑에서 일을 계속하거나 군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파놉티콘은 인간 교화를 위한 일종의 공장인 셈이다.
4. 순진할 만큼 이상적인 계획에서 알 수 있듯이, (벤담이 영업을 뛰었던 프랑스에서) 파놉티콘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발목을 잡은 건 경제적인 부분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파놉티콘과 비슷하지만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었던 방사형의 미국식 감옥이 더 인기를 끌었다. 효율성을 최고로 고려한 파놉티콘이 현실 세계에서는 공간을 낭비하는 건축이었다니, 웃픈 일이다. 이 외에도 파놉티콘의 감시탑이 생각보다 감시의 효율이 좋지 않았고, 수감자를 대하는 시스템이 박애주의가 유행하던 당시 사회 분위기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열정맨이던 벤담은 자비로 파놉티콘을 지으려고 했으나 결국 파산하고 만다.
5. 하지만 파놉티콘의 정신을 계승한 건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병원과 학교가 그 예이다. 이 건물들은 대체로 효율성과 감시에 입각해서 지어진다. 외관을 고려하지 않고 기능성에만 충실하게 지어진 건물 또한 파놉티콘의 그늘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파놉티콘은 단순한 감옥이 아니다. 파놉티콘은 근대 합리주의 사상과 인간에 대한 연구, 도덕과 법 등 수많은 관점을 종합해서 태어난 하나의 세계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