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미스 <정치철학> 리뷰
1. 들어가기에 앞서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정치철학의 '정치' 하나만을 보고, 속세의 먼지로 범벅이 된 정치의 이미지를 떠올려서는 안 된다. 정치철학은 정치이기에 앞서 철학이기 때문이다. 이 학문은 일차적으로 "국가란 무엇인가?", "누가 권력을 가질 것인가?", "가장 좋은 정치체는 무엇인가?"와 같이 보다 근본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문제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굳이 정치학도 아닌 정치철학에 주목해야 할까? <정치철학>의 저자 스티븐 스미스는 위의 질문들이 현대인 지금에도 유효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여전히 정의, 불평등, 권력 분배의 문제들이 명료하게 해결되지 않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더불어 수많은 사상가들의 생각은 머릿속에 여전히 살아 숨쉬고, 법과 윤리의 모습으로(한편으로는 이데올로기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중이다. 그렇기에 정치철학은 과거의 묵은 공식을 벗어던지고 진화하는 과학과 다르다. <정치철학>은 위대한 사상가들의 의견을 통해 화두를 던지면서, 고대 폴리스부터 민주주의에 이르는 정치사상의 조류를 추적해나간다.
2. 첫 번째로 다루는 저작 <안티고네>는 국가와 초월적 힘의 갈등을 다룬다. 안티고네는 테베의 왕 크레온의 명령을 어기고 배신자 오빠를 땅에 묻어준 뒤, 가족법이 국가보다 더 근본적이라고 주장한다. 국가의 명령(이성)과 혈연과 친족(자연, 신비) 어느 것이 더 우선시되어야 하는가? 국가는 공공의 목적이라는 이유로 가족의 전통에 간섭할 자격이 있는가? 이는 훗날 신학과 정치 사이의 분쟁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번에는 플라톤의 대화편인 <변명>을 살펴보자. 소크라테스는 철학의 이름으로 국가를 재판에 부친다. 이때부터 "누가 통치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이 시작된다. 소크라테스는 이성을 최고선으로 내세우며, 권위와 전통에 무자비한 공격을 가한다. 따라서 지식에 대한 탐색 때문에 철학과 국가 사이에는 불가피한 긴장이 존재한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보고 자란 플라톤은 철학자가 다스리는 <국가>를 기획한다. 이 국가의 최고 덕목은 지식이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들은 공동체의 조화를 위해 철저히 교육된다. 칼 포퍼가 지적했듯, 플라톤의 공화국은 전체주의적인 성격을 띤다. <국가>는 이상 국가를 꿈꿨던 플라톤의 바람일까? 아니면 철학과 국가의 조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일까? 이어서 본격적으로 정치학의 토대를 놓은 아리스토텔레스는 먼저 인간을 '정치적 동물'로 정의한다. 그는 우애(philia), 중용, 조화를 강조하며 사회적 위계의 존재를 주장하고, 여기서 노예제와 엘리트 귀족주의를 이끌어낸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권력을 배분하는 통치 기구에 초점을 맞춘다. 정치체는 경우에 따라 한 사람, 소수, 다수가 지배하는 형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누가 통치할 것인가?"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답이다.
3. 성경은 색다른 정치학을 제시한다. 바로 국가, 정부의 지배에 대한 경계이다. 왜냐하면 우상숭배에 대한 유혹이 항상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정신, 국정운영 기술을 덕목으로 내세운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성경은 아벨과 같이 경건하고 겸손한 사람을 극찬한다. 영웅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다. 성경의 영웅들은 웅대한 기상을 가진 그리스의 영웅들과 달리 죄의식과 부적격자라는 의식에 시달린다. 세속과 신앙의 갈등은 그리스도교 탄생부터 존재했던 것이다. 이번엔 그 유명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으로 가 보자. 우리는 당시 이탈리아가 수많은 도시국가로 나뉘어 전쟁과 모략이 판치던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그는 어설픈 당위를 벗어난 현실 정치를 주창하고, 카리스마와 예언자적 권위를 가진 군주의 모형을 제시한다. 이 군주는 엄밀히 말하면 단순 이기주의와 악덕과는 거리가 있으며, 폭력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이용하는 인간이다. 나아가 군주는 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귀족들을 통제하고, 제도를 만들며, 각종 개혁을 통해 나라를 다스리게 된다. 이런 이유로 마키아벨리는 귀족이 아닌 평민이 국가 권력과 토대가 된다는 민주주의적 견해를 피력한다.
4. 드디어 근대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등장한다. <리바이어던>의 홉스는 절대정부라는 카드를 내놓는다. 하지만 그는 개인의 자연권(자기보존권)과 국가가 사회계약의 산물임을 강조하여 오히려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에 기여한다. 홉스는 사람들이 자연상태의 죽음과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정부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군주와 대비되는 '주권자'가 탄생한다. 주권자는 법으로써 통치하며, 인간의 생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후 로크가 초점을 맞춘 건 자기 소유라는 개념이다. 그는 소유물을 획득하는 인간 본성에 주목한다. 그 과정은 우리 자신의 노동을 통해 이루어지며, 노동력을 썼다는 사실이 바로 소유권을 증명한다. 따라서 로크는 정부의 과제가 재산권 보호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제 새로운 정치는 숭고한 가치보다는 상업, 쾌락주의적인 것을 따른다. 이어서 로크는 비대한 행정권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강력한 주권자를 옹호한 홉스와 대비되는 부분이다. 이후 등장한 루소는 불평등에 주목하면서, 사유재산 보호자로서의 정부 개념을 비판하고, 사회계약이 권력자들의 사기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유로웠던 초기 자연상태의 인간을 찬미한다. 무질서를 막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 그는 '일반의지' 개념을 토대로 한 사회계약론을 내놓는다. 여기서 루소가 홉스, 로크와 다른 점은 자유가 법 이외의 영역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법을 자유의 시작점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어쨌든 인민 모두가 이 일반의지를 구성하기 때문에, 법에 복종한다는 건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복종하는 것과 같게 된다.
5. 긴 역사와 많은 사상가들을 거쳐 이제 민주주의에 이르렀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동시대 프랑스와 미국에서 일어난 민주주의의 탄생에 주목한다. 왜 미국의 민주주의는 성공적으로 정착했고, 프랑스의 민주주의는 독재로 귀결되었을까?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미국의 지방자치이다. 미국인의 정신은 타운(town)에 있다. 그들은 이곳에서 평화를 지향하고 자유를 사용하는 습관을 훈련받는다. 또한 토크빌은 철학자들의 예측과 달리 미국에서 종교가 도덕의 영역에서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을 목격했고, 종교가 세속에서 분리되거나 통합될 수 없다는 믿음을 같게 되었다. 그리고 토크빌은 이상적으로만 보였던 민주주의에도 결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바로 다수가 소수에게 끼치는 폭압의 가능성이다. 포퓰리즘 선동가, 계급투쟁 등은 민주주의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것들이었다. 우리는 '민주적 전제정치' 하에서 유순하고 조종당하기 쉬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 플라톤 또한 비슷하게 민주적 삶이 온갖 호기심, 취미, 자극제에 유혹당한 나머지 우리의 정체성을 좌우하는 것들에 집중하기가 힘들어졌다고 설명한다. 놀랍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가 딱 그렇다. 이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선견지명이다.
6. 챕터가 많음에도 서평을 열심히 쓴 이유는 <정치철학>이 19년에 접한 책 중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다룬 다양한 일차 문헌과 서적들을 참고하면서 얻었던 지식은 내게 값진 정신적 양분이 되었다. <정치철학>은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애정이 있다면 충분히 독파하고도 남을 책이다. 다양한 사상가들을 너무 깊지도, 얕지도 않게 다루기 때문에 밸런스가 잡혀있고, 이후 깊게 파고들려고 할 때도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 준다. 일차원적인 해설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해석과 질문을 던지는 건 덤이다. 내용적인 면에서는 내가 국가, 의무, 권리, 자유, 사회계약, 자연상태 등의 개념들과 친해지는 데에 크나큰 도움을 주었다. 이 정도로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 나아가 <정치철학>은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유용한 정신적 도구를 제공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