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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크롬 May 03. 2020

군주를 위한 현실적인 정치 꿀팁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리뷰 

  1. <군주론>은 고전계의 슈퍼스타라고 할 만하다. 이 책만큼 다양한 출판사에서 번역되고, 널리 읽히는 고전이 있을까 싶다. <군주론>의 가식 없는 화끈한 지침들은 정치를 거쳐 경영, 자기계발까지 두루두루 영향을 미쳤다. 이 글에서는 마키아벨리가 메디치가에 굽신거린 모사꾼이 아니라 피렌체의 안녕을 바란 현실주의자일 뿐이고, 왕정보다는 공화정을 더 이상적인 체제로 보았으며, 동시대 사상가와 달리 위선 없는 정치철학을 구축한 것에 대해 재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든지, 그리고 르네상스와 무정부적인 상황 아래의 이탈리아에서 영웅이 탄생했다는 등의 널리고 널린 견해는 다루지 않으려 한다. 마키아벨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독자의 몫이다. 나는 <군주론>의 역사적 사실과 의의가 아닌, 효용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것이다.



  2. <군주론>이 다른 고전에 비해 많이 번역되고 종종 인용되는 이유는 아마도 낮은 진입장벽과 유용성 덕분일 것이다. 심지어 교보문고에 '마키아벨리 군주론'을 검색하면 상품이 150건으로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의 49건보다 3배가 많다. 즉, <군주론>은 다른 고전에 비해 읽기 쉽고, 삶에 대한 지침으로 유용하기에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았다고 볼 수 있다. <군주론>은 헌사를 제외하고 26장으로 잘게 나누어져 있으며(호흡이 짧다), 거의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 탓에 독서에 무리가 없다. 문제가 되는 건 이탈리아 역사에 대한 이해도뿐이다. 한편 <군주론>은 다른 철학 저서처럼 형이상학적 개념이나 치밀한 논증을 구사하지 않는다. 이 책은 역사와 경험에 기반한 전략을 제시한다.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윤리적, 신학적 당위조차 없다. 그저 '이렇게 해야지 편하다'이다. 따라서 우리는 <군주론>을 당시 국정 운영 분야의 '꿀팁'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현대인들은 이 부분을 삶의 태도와 지침, 그리고 정치·경영 전략으로서 응용하고 있는 것이다.



  3. 그렇다면 <군주론>은 당장 믿고 읽을 수 있는 고전일까? 그건 잘 모르겠다. 일단 상기한 낮은 진입장벽에 대해 살펴보자. <군주론>은 쉽긴 하지만 딱히 재미가 있진 않다. 역사 서적이라는 측면을 배제하면, 15~16세기라는 시대적 배경 아래에서 그 이전 역사를 경험적 근거로 삼아 전개하는 논리는, 솔직함에 있어서는 흥미로울지는 몰라도 우리들의 세계관을 자극할 만큼 혁신적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숙청과 이미지 관리, 여우와 사자로 요약되는 마키아벨리의 군주가 현시대의 대중매체 속에서 끊임없이 등장해왔기 때문일까. 교활하고 카리스마 있는 군주 하나로 책 전체가 재밌어질 수는 없다. 그렇기에 <군주론>이 간단하다 할지라도, 구구절절 정독하면서 신선함이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4. <군주론>의 유용성은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통찰력과 결단력을 겸비한 정치가와 CEO의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다. 너무 감명을 받은 나머지 '우리 시대에 마키아벨리를 반드시 읽어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끄적일 수도 있다. 이 부분에서도 나는 백퍼센트 동의하지는 않는다. 당시 분열된 이탈리아의 역사적 배경 하에서 전쟁, 용병, 귀족 따위의 개념이 등장하는 <군주론>은 외교적 참고서라면 몰라도 국가 내부에서의 구체적인 정치 · 경영 모델로 쓰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고, 토사구팽을 통해 끊임없이 적을 만드는 <군주론>의 군주는 조건부로는 리더의 자질을 갖추었을지언정 혁신과 균형 잡힌 조직을 이끄는 부분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군주론>에는 '멋진' 전략들이 많아도 실질적으로 유용한 교훈은 많지 않다. <군주론>을 본인의 세계관에 투영하기 전에 꼭 고민해보기 바란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주론>에서 제시되는 변덕스러운 인간상에 대한 통찰에는 공감할 수 있다. 늘상 배신할 기회를 노리고, 호의가 권리인 줄 아는 사람들 말이다. 마키아벨리의 세계에서 믿을 건 자신뿐이다. 그렇기에 군주는 성격뿐만 아니라 능력까지 완벽해야 한다. 그래야 빈틈없이 자신을 보존할 수 있다. 나아가 군주는 '운'을 통제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 마키아벨리는 세상이 운명에 의해 전부 좌우된다는 세계관을 따르지 않는다. 우리는 충분히 대비하고 능력을 신장시킴으로써 예측 불가능한 '운'에 부분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군주론>은 현시대의 훌륭한 지도자들이 하는 노력과 궤를 같이한다. 내 생각에 <군주론>이 주는 가장 큰 효용은, 첫째, 독립심과 자기계발에 대한 암시, 둘째, 단순한 권력 보존이 아닌 조직의 불확실한 미래와 운명을 견인하려는 보다 큰 움직임과 가치 설정이다. 따라서 조직까지는 아니더라도 나 개인을 개선하기 위해 <군주론>을 읽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은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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