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달리오 <원칙> 리뷰
1. 레이 달리오(Raymond Dalio)의 <원칙>은 그 간결한 제목에서 풍겨오는 비밀스러움 탓에 마법의 책처럼 보이기도 한다. 레이 달리오는 헤지펀드 브릿지워터 어소이에이츠(Bridgewater Associates)의 창립자이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펀드를 운영하는 사람이고, 2020년 블룸버그가 선정한 세계 100대 부자에서 79위에 랭크되었다. 한 마디로 <원칙>은 투자의 마법사가 쓴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의 투자 비법에 관해서는 논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 모두가 성공을 위해 익히고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을 제시한다. <원칙>은 저자인 달리오가 오랜 시간의 경험으로부터 일반화와 압축을 거듭하여 만들어낸 삶과 경영에 대한 철학이다.
2. 700페이지 분량의 <원칙>은 레이 달리오의 자전적 이야기인 '나의 인생 여정', 자기계발적 지침인 '인생의 원칙', 그리고 경영에 관한 '일의 원칙'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챕터는 나머지 두 챕터를 위해 달리오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 설명하는 부가적인 부분이므로 이 글에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먼저 '인생의 원칙' 챕터는 발전을 위한 5단계 과정을 제시하고, 인간의 사고 원리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을 바탕으로 위 과정을 적용할 수 있는 방법론을 이끌어낸다. 가령 우리는 약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고통스럽겠지만 극복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하고 그렇지 못한다면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심지어 내 약점과 실수는 조직 구성원들 모두에게 공개된다. '극단적 개방성' '극단적 투명성'으로 불리는 이 개념들은 <원칙>을 관통하는 핵심 철학이다. 또한 의사결정에 있어서 사람들은 오로지 신뢰도로 평가받아야 한다. 성공 경험과 논리력을 갖춘 사람은 신뢰도가 높은 사람이다. 이들은 관련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의견을 제시할 때 더 많은 가중치를 갖게 된다. 즉, 신뢰도 가중치 시스템은 개방적인 조직문화에도 불구하고, 1인 1표의 민주적인 의사결정과는 구분된다. 이러한 철학들은 브리지워터의 '아이디어 성과주의'로 귀결된다. '아이디어 성과주의'는 위계에 상관없이 서로의 약점을 공개하고 비판하며, 자유롭게 생각을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사실상 실력과 경험에 따라 개인의 입지가 좌우되는, 게임 같은 원칙이라고 볼 수 있다.
3. '일의 원칙' 챕터는 조직 운영에 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는 '인생의 원칙'을 조직 단위로 확장시킨다. 여기서도 '극단적 투명성'과 '극단적 개방성'이 적용되며, 직원들은 서로를 끊임없이 평가하고 검증한다. 문제가 생긴다면 그 누구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빡센(?) 기업 문화를 견디지 못하는 직원은 배제된다. 달리오는 특히 브릿지워터의 직원들이 탁월함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3C라고 불리는 성격(Charactor), 상식(Common sense), 창의성(Creativity)으로 요약된다. 브릿지워터의 인재상은 일을 게임처럼 즐기고, 자기 삶과 동일시하며, 회사를 가족과 같이 대하는 사람이다(이 부분에서는 동양적인 경영철학이 돋보인다). 따라서 가치관이 먼저고 능력이 그다음, 그리고 기술이 가장 덜 중요하다. 위 인재상은 앞서 말했듯 '극단적' 시스템을 통해 고통을 견디고 성장해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모여 '아이디어 성과주의' 조직을 구성한다. 그들은 실수를 하더라도 반성을 통해 새로운 가르침을 얻는다. 그들은 의견 차이로 갈등하지만 신뢰도 가중치 원칙을 통해 가장 최적화된 의사결정을 한다. 한편 경영자의 역할은 그들을 올바른 자리에 배치하고 감독의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는 높은 시야에서 그들을 교육하고 평가하고 분류한다. 조직은 마치 기계처럼 굴러간다. 달리오가 말했듯, 최고의 경영자는 철학자, 예술가가 아니라 엔지니어여야 한다.
4. 어찌 보면 <원칙>은 철저히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으로 비치기도 한다. 과거 브릿지워터의 경영이 광신도적이라고 비판을 받았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브릿지워터는 일에 미친 워커홀릭들의 천국이고, <원칙>을 오직 그들만을 위한 책으로 남겨두어야 할까? 꼭 그렇게 볼 이유는 없다. <원칙>은 성공적인 인생과 경영 철학을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달리오의 솔직한 대답일 뿐이다. 성공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 자신의 약점을 정면으로 마주한 경험이 있는가? 피드백을 들을 땐 기분이 언짢고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성장을 위해서는 이것들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혹은 성공한 미래와 속 편한 현재를 바꾸던가 둘 중 하나다. 물론 이를 얼마나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여부는 사람의 기본적 성향에 크게 좌우된다. 브리지워터에 입사한 많은 사람들이 적응을 하지 못하고 떠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특히 <원칙>을 눈치보기와 체면, 의전을 중시하는 한국 기업에 적용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친구끼리도 약점을 이야기하고 성장을 도모하기도 어려운데 말이다. 나는 <원칙>을 읽고 결국 성공 유전자는 정해져 있고, 밑바닥을 치지 않는 이상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철학에 더욱 힘을 얻었다. 씁쓸한 결론이지만, 자명한 상식이기도 하다. 러셀은 말했다. 사람들은 생각을 하려느니 차라리 죽고 말 것이라고. 읽는 건 쉽지만, 받아들이는 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