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데카르트 <방법서설> 리뷰
1. 근대철학의 서막을 여는 명제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에 등장한 이 명제는 몸과 마음, 그리고 주체와 대상을 구분하면서 철학적 이원론과 회의주의의 기초 원리가 되었고, 칸트를 비롯한 후대 철학자들의 이론 체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또한 경험이 아닌 이성으로부터 진리를 연역해내는 그의 합리주의 사상은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와 궤를 같이 했다. 문예출판사의 <방법서설>은 데카르트의 초기작인 '정신지도규칙'과 '방법서설'의 첫 번째 에세이를 다룬다.
2. '정신지도규칙'은 총 21개의 규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성을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 방법론이다. 쉽게 말하자면 "어떻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며 참된 판단을 할 수 있을까?"를 꼼꼼히 따져 보는 규칙들이다. 가령 제7규칙인 "지식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 우리 계획에 속하는 모든 것 그리고 각각을 지속적이고 어디에서도 단절되지 않는 사유 운동으로 두루 살펴야 하고, 충분하고 순서 잡힌 열거로 파악해야 한다."를 살펴보자. 이 말은 정보를 충분히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열거를 위해서는 필요한 부분들을 빠뜨리지 않고 겹치거나 쓸모없는 부분을 포함하지 말아야 한다. 경영과 기획의 개념인 MECE를 떠오르게 하는 규칙이다. 그리고 데카르트는 '직관'과 '연역' 개념을 강조한다. '직관'이란 의심할 수 없는 뚜렷한 파악이며, '연역'은 이로부터 확실한 진리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명제도 이러한 과정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데카르트는 이 규칙과 개념들로 새로운 철학적 체계를 떠받치는 토대를 마련한다. 그는 새로운 진리를 아무것도 도출해낼 수 없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변증론자들의 삼단논법을 비판하고, 오로지 철학적 회의를 바탕으로 한 참된 인식, 그리고 연장 · 운동 등의 기초 관념들로부터 확실한 앎의 체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3. 비교적 적은 분량의 '방법서설'은 '정신지도규칙'의 방법론을 토대로 기존 학문들과 도덕 규칙, 형이상학, 자연과학을 차례차례 바라본다. 앞서 언급한 코기토 명제는 여기서 비로소 등장하지만, 그 원리를 '정신지도규칙'만큼 상세히 짚고 넘어가지는 않는다(역자가 이 둘을 함께 수록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데카르트는 개괄적인 설명에 집중하는데, 형이상학을 다루는 챕터에서는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신의 존재를 논증한다. 나는 이성으로 완전성이라는 개념을 상상할 수 있고, 그 완전성은 덜 완전한 나로부터 비롯될 수 없으므로 완전성은 결국 신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가 굳이 신을 논증한 이유가 있다. 코기토 명제로 인해 심신이 분리되고, 육체와 외부 대상에 대한 확실성이 사라지게 되므로 이에 대한 변호로 신의 존재를 끌어들인 것이다. 또한 수학적 개념과 같이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것 또한 신의 관념에 포함되어 있다고 덧붙인다. 물론 현대 철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논리나 존재 개념에서 비판받을 부분이 있지만, 단순히 맹목적 믿음이 아닌, 회의적 방법으로부터 논증을 전개해 나갔다는 것에 '방법서설'의 의의가 있다.
4. 철학에 관심이 없거나 비전공자라면 <방법서설>은 그저 흥미로 읽기에는 토가 쏠리는 책이다. 혹시나 코기토 명제 하나에 이끌려서 책을 집어 들었다면 곧 특유의 늘어지는 만연체와 수많은 추상 개념 속에서 길을 잃을 것이다. 나의 경우 수학과 논리에 대해서 형이상학적으로 운용하는 '느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지루했으며 이해하기 어려웠다. <방법서설>은 고전이 무조건적으로 유익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준 책이다. 물론 서양 철학사의 큰 부분을 장식하는 고전인 만큼, 한 번쯤은 직접 그 실체를 조감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사고가 과거에는 혁명적인 발견이었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그중 하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