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플랫폼의 생각법> 리뷰
1. 우리는 플랫폼을 다소 두루뭉실하게 정의한다. 다양한 생산자들의 서비스를 한 유통망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무언가로 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변의 많은 서비스들이 플랫폼의 형태로 간주된다. 하지만 <플랫폼의 생각법>은 보다 엄밀한 조건의 플랫폼을 정의한다. 플랫폼은 양면시장을 대상으로 한 사업 모델이며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고객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생산과 영업, 마케팅에 참여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에만 집중한다. 이들은 규모의 추구와 개방이라는 원칙을 통해 경쟁에 참여한다. 저자가 볼 때 이 조건들을 만족하는 '진정한' 플랫폼 기업들은 몇 없다. 따라서 이 책은 플랫폼을 엄밀한 관점으로 볼 것을 요구한다. <플랫폼의 생각법>은 단순히 기업들의 성공 사례를 나열한 것이 아닌, 방법론에 관한 책이다.
2. 구글은 지식의 공급과 소비를 책임진다. 이들의 양면시장은 어떨까. 구글은 페이지랭크라는 알고리즘을 이용해 소비자들의 검색을 용이하게 하고, 애드센스 · 애드워즈라는 광고 도구를 통해 참여자들을 끌어모은다. 광고는 오직 정보의 키워드와 관련해서만 노출되기 때문에, 구글은 추구하는 가치(지식 공유)와 수익 모델을 위화감 없이 효과적으로 분리할 수 있었다. 미디어 플랫폼인 페이스북도 마찬가지로 뉴스피드와 '좋아요' 시스템을 통해 SNS 내 참여자들의 콘텐츠 생산을 크게 진작시킬 수 있었다. 또한 '공유' 기능으로 외부 콘텐츠와도 연결되어 플랫폼의 개방 원칙을 충족시켰다. 싸이월드와 페이스북의 차이점이 바로 여기 있다. 싸이월드는 폐쇄적이었고, 회원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닌 일방적인 서비스만을 제공할 뿐이었다.
3. IT 기술에 힘입어 무에서 시장을 구축한 구글, 페이스북과 달리 상거래 플랫폼인 아마존은 기존 시장과 경쟁해야만 했다. 더군다나 서비스를 복제하기도 쉽고, 특별한 경쟁력을 갖추기도 어려운 상거래 플랫폼들 사이에서 아마존이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아마존은 자체 물류센터(아마존 풀필먼트세터)를 짓고 유통을 직접, 효율적으로 담당한다. 소비자들은 락커를 비롯한 무인택배 수령 시스템을 통해 좀 더 편하게 상품을 받아볼 수 있다. 한편 아마존은 프라임 멤버십이라는 정액 서비스를 운영한다. 이는 무료배송은 물론, 음악, 영상, 전자책 등의 서비스까지 통합되어 제공된다. 반대로 생산자들은 FBA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아마존의 상품 관리를 받을 수 있고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으로 노출될 기회가 주어진다. 아마존은 플랫폼 내의 자유로운 거래 속에서도 일종의 품질관리를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4. 하드웨어와 iOS를 통합하여 제공하는 애플은 앞선 기업들에 비해 폐쇄적인 플랫폼이다. 다양한 기업의 스마트폰에 장착되는 안드로이드와 달리 iOS는 오직 아이폰에서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애플은 '프리미엄'을 추구한다. 이들의 고객은 구글 안드로이드 이용자에 비해 부유하고, 스마트폰 이용 시간도 길며, 어플 스토어에서 2배 가까운 소비를 한다. 더불어 적지 않은(약 6억 명) 충성도를 가진 고객 덕분에 애플은 폐쇄적인 플랫폼 정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개방이라는 큰 속성을 포기한 만큼 애플이란 플랫폼은 불확실한 미래에 노출되기 쉽다. 단말기의 비교우위가 점차 떨어지기에 애플은 에어팟과 같은 다양한 기기를 도입하여 경쟁력을 확보하려고 할 것이다.
5. 다음으로 '공유경제'를 지향하는 우버를 살펴보자. 우버는 잉여자원을 활용하여 아예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낸 플랫폼이다. 재고처럼 남아있던 생산자의 서비스와 기존 시장에 존재했던 소비자의 숨겨진 니즈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에어비앤비도 같은 부류에 속한다. 하지만 우버는 지나친 수수료(20%)는 물론이고 전문 기사의 등장으로 '공유'의 가치가 훼손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한편으로 한국은 왜 우버와 같은 서비스가 활성화되지 못할까? 미국의 경우 우버가 등장함으로써 기존의 택시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며 가치를 창출했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수많은 택시를 비롯하여 버스, 지하철로 대표되는 훌륭한 교통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차량 공유 서비스는 새로운 가치의 창출이 아니라 기존 가치의 파괴로 귀결된다. 단순히 '공유'라는 미래적 가치에 호소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6. 유튜브는 앞서 정의한 '플랫폼'의 조건을 가장 잘 만족하는 콘텐츠 플랫폼이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자유롭다. 그렇지만 넷플릭스는 다르다. 넷플릭스의 생산자는 거대 자본을 전제로 하는 영화와 드라마를 공급한다. 따라서 다수의 생산자를 유치하기 어렵고, 지적 재산권에 민감하기에 개방의 가치를 실현하기도 쉽지 않다. 또한 디즈니 플러스 같은 경쟁자의 등장으로 플랫폼이 자체적으로 오리지널 콘텐츠 생산과 투자에 관여한다. 이는 위 플랫폼의 조건들 중 불간섭의 원칙을 무너뜨린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영화와 드라마의 특수성으로 인한 불가피한 결말일지도 모른다.
7. <플랫폼의 생각법>은 플랫폼의 원칙이 서비스의 형태에 맞게 부분적으로 변형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규모의 성장을 위해서는 자유와 개방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이후 페이스북의 뉴스 검열과 아마존의 FBA가 그랬듯, 품질관리를 위해서 서비스에 변화구를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플랫폼은 이익 추구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한다. 이익 추구는 규모의 달성과 상충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규모의 달성을 통해 성장하는 플랫폼은 독점의 형태를 띠게 된다. 현재 성공한 플랫폼들은 '선량한 독점'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들이 1등 플랫폼이 된 이유는 이익 이전의 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구글은 지식의 공유를, 아마존은 고객의 가게를 지향한다. 전 세대와 다르게 플랫폼이 영속적인 기업의 형태로 거듭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