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잘 쓰는 예쁜 누나

헤이즈 [Lyricist] 리뷰

by 최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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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프리티 랩스타> 이후 5년, 헤이즈는 완성형 아티스트가 되었다. 'Lyricist'로 이름 붙인 EP 제목은 무척이나 자신만만하다. 물론 본인 앨범의 프로듀싱과 작사에 꾸준히 참여하던 헤이즈였지만, 이번 앨범만큼은 작사 능력에 방점을 찍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는 의중이 다분하다. [Lyircist]는 그런 점에서 청자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헤이즈의 스토리텔링은 20대 후반, 솔로, 커리어 우먼 등의 키워드로 압축되는 그녀의 콘셉트와 함께 특유의 브랜드를 구축한다. 자, 일이 너무 잘 되는 작사가 헤이즈를 만나 보자.




2. 앨범의 타이틀인 '작사가'와 '일이 너무 잘 돼'는 실험적인 노선의 전자와 기존 음악의 재현인 후자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작사가'의 보사노바와 차분한 보컬의 조화는 기존의 없던 신선함을 준다. 특히 "천사와 악마가 내 손끝에", "하필 작사가가 돼 너를 얘기해야 해"와 같은 가사는 헤이즈의 캐릭터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부분이다. 즉 '작사가'는 어느 정도 정형화된 헤이즈의 음악적 문법을 탈피하고, 매력적인 가사와 더불어 새로움을 어필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일이 너무 잘 돼'는 사랑의 실패로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흥미롭게 그려냈으나, 역시나 기존 문법의 반복으로 크게 인상적이지는 않다. 이처럼 헤이즈는 더블 타이틀로 두 가지 메뉴를 정기적으로 내놓고 있는데, '작사가'와 같이 서브 역할을 하는 타이틀이 차트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는 건 처음인 것 같다(2020년 24주차 가온차트 기준).



캡처.JPG 존예 (출처 : '너의 이름은' MV)



3. 다른 수록곡들은 어떨까. 일본 애니 제목을 오마주한 듯한 '너의 이름은'은 애쉬 아일랜드의 피쳐링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함께했다는 의의만 있을 뿐 시너지는 의외로 크지 않다. 여린 감성과 거친 울분의 조합을 노린 것 같지만 생각보다 극적인 대비가 이루어지지 않은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애쉬 아일랜드가 조금 더 빡세게(?) 나갔으면 좋은 그림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하루 24시간 중 1분, 즉 1440분 중의 1분을 의미하는 '1/1440'은 [Lyricist] 중 유일하게 리듬감이 있는 얼터네이티브 R&B 트랙이다. 이 곡 또한 독특한 주제의식의 가사가 돋보이지만, 헤이즈가 주력으로 미는 음악 스타일이 아니기에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해서 아쉽다.




4. 그리고 [Lyricist]가 이전 커리어와 또 다른 이유는 프로듀서 TOIL(토일)의 참여이다. 헤이즈는 초중반 커리어의 프로듀싱을 같은 소속사 아티스트 DAVII(다비)와 함께했고, [만추]부터는 432가 주로 담당하고 있다. [Lyricist]에는 TOIL('작사가', '너의 이름은')과 432('일이 너무 잘 돼')가 고루 참여했다. TOIL은 힙합씬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프로듀서로서(애쉬 아일랜드의 'Paranoid'를 만들었다!) 첫 문단에서 언급한 '작사가'를 선보여 이번 헤이즈 앨범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는 장르 구분 없이 아주 다양한 스타일을 구사하는 밸런스형 프로듀서인데, 이런 장점으로 인해 근 몇 년 안으로 많은 씬에서 러브콜을 받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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