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크롬 Jun 25. 2020

팬덤 스트리밍의 정당성

음악 소비에 대한 도덕적 접근

3월에 썼던 글입니다.


  1. 차트 사재기 논란이 있을 때마다 항상 비슷하게 제기되는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아이돌 팬덤의 스트리밍인데, 밤과 새벽 시간을 틈타 이루어지는 이들의 수록곡 줄세우기는 차트의 다양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아왔다. 간혹 이런 '총공'이 결과론적으로 음원 사재기와 다를 바 없다는 의견 또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엄연히 존재하지 않는 수요를 만들어내는 불법 사재기와 실제로 여러 사람들의 물리적인 노력을 동반하는 팬덤의 스트리밍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아무리 불편하게 비추어지더라도 그들의 밀도 있는 소비를 법적으로 비판할 근거는 없다.



  2. 그렇다면 팬덤의 스트리밍은 현 차트 시스템 상에서 도덕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있는가? 이를 실제 수요는 존재하나 사용 단계에 이르지 못한, 일종의 소장 행위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어쨌든 간에 합법적 구매 행위가 이루어지고 음악을 이용하는 방법은 온전히 그들 몫이니 비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장과의 유비 관계는 오로지 팬덤 그들만의 즐거움만이 아닌 순위 경쟁이라는 외부적 목적도 함께 존재하기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나는 차트가 그저 음악을 절대적 소비 순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닌, '대중의 트렌드를 반영한다'라는 원칙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불균질한 소비는 지양될 필요가 있다. 즉, 비(非) 팬덤 또한 이용하는 '공공의' 차트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로 팬덤은 도덕적인 책임을 피해 갈 수 없다.



  3. 한편 사재기와 비슷한 접근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먼저 스트리밍 반영을 제한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생각해 보자. 하지만 합법적인 소비를 건드린다면 일종의 자유를 훼손하는 꼴이 된다. 나는 그래서 이 문제가 궁극적으로 정치적인 문제로 귀결된다고 생각한다. 공익을 위해 차트에 끼치는 영향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과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자유롭게 소비할 권리 중 무엇이 우선인지는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차트를 둘러싼 권력과 이해관계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위의 논의를 피해 갈 수 없다. 아예 차트 시스템을 통째로 바꿔버리면 어떨까? 그렇다면 우리는 "차트란 무엇이며, 무엇이 좋은 차트인가?"라는 더욱 까다로운 질문과 마주한다.



  4. 차트는 잠깐 제쳐두고 팬덤이 스트리밍을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자. 좋은 음원 차트 성적을 받기 위해, 타 팬덤과의 경쟁심, 대중들에게 아티스트의 음악을 널리 알리고 싶어서 등등의 복합적인 동기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차트의 위상이 떨어진다면 성적과 경쟁의 의미가 무색해지므로 줄세우기 현상 또한 줄어들까? 이는 보증할 수 없다. 가령 현재 뮤직뱅크, 더쇼와 같은 음악 프로그램의 1위는 대중적인 인기를 전혀 반영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종의 훈장(n관왕)처럼 작용한다. 팬덤은 경쟁을 통한 그들의 성취가 실질적으로 의미가 있는지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 것 같다. 따라서 팬덤이 타이틀과 숫자에 연연하는 한, 차트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한들 줄세우기가 사라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5. 이런 이유로 나는 차트 시스템을 직접 건드리는 것으로는 줄세우기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차트에 여러 가지 규제를 걸면 당장은 생태계가 정돈되어 보일 수는 있겠으나, 장기적으로 트렌드 반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차트의 근본적인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차라리 팬덤의 성숙한 문화를 기대하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폐허 속에서 얻은 훈장은 빛나지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실용'을 위한 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