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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크롬 Jun 28. 2020

음알못도 차트 1위를 할 수 있다? 뿌슝빠슝

KLF <히트곡 제조법> 리뷰

   1. 2020년에 대한민국에서 멜론 1위를 차지하는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사재기? 아니면 오디션 프로그램 참여? 혹은 슈퍼스타의 샤라웃을 받아 역주행? 아무래도 고시를 준비하는 편이 빠른 것 같다. 그렇다면 80~90년대 영국의 상황은 어땠을까. 그때도 음악성만 믿고 막연한 행운에 의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PR 매니저를 통해 라디오에 어떻게든 음반을 실어야 했고, 인터넷이란 게 없던 당시 마케터들은 직접 발품을 팔아 영업을 뛰어야 했다. 요컨대, 맨땅에서 히트곡을 만드는 건 시대, 인물을 막론하고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히트곡 제조법>은 자신만만하다. 저자인 KLF는 빌 드러먼드(Bill Drummond)와 지미 코티(Jimmy Cauty)가 결성한 영국의 2인조 음악 그룹으로, 실제 히트곡을 여러 번 '제조'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영국 특유의 냉소적인 유머로 당대 대중음악 씬의 이면을 까발리는 동시에, 결코 심오하지 않은 과정에서 히트곡이 탄생하는 모습을 낱낱이 설파한다. 따라서 <히트곡 제조법>은 어설픈 실용서적이 아니며, 제목 또한 결코 약 파는 사이비 신도들의 속삭임 또한 아니다.





  2. <히트곡 제조법>은 아주 친절하다. 의기소침한 독자들을 위한 진심 어린 조언부터 호구가 되지 않는 법까지 하나하나 알려 준다. 그렇다면 히트곡은 어떻게 탄생할까? 자신이 전문 뮤지션일 필요도 없다. 먼저 선대의 기록을 찾아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리메이크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잘만 만들면 어느 정도 성공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례를 적절히 참고함과 동시에 꽂히는 코러스(훅, 싸비)를 만들어야 한다. 단, 듣기만 해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매력적인 그루브를 포함해야 하며 입에 착 붙는 가사를 붙여야 한다. 특히 가사는 가장 대중적인 공감대를 노려야 하며 클리셰 주변을 맴돌 필요가 있다. 머릿속에 밑그림이 그려졌다면 이제 스튜디오로 출발한다.





  3. 스튜디오에서는 엔지니어를 구슬리는 동시에 '있는 척'을 한다. 인맥과 작곡 센스 등 이들의 도움을 최대한 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열심히 차를 끓여 나르고, 아이디어와 레퍼런스만 제시하면 된다. 나머지는 재능 있는 그들이 알아서 해 준다. 그렇게 구색을 맞춘 트랙이 구려 보이는 과정을 몇 번 감내하면 데모가 완성된다. 이젠 다음 단계다. 데모를 가지고 변호사, 회계사를 섭외하는 동시에 배급사(유통사)로 간다. 아무리 내가 듣보잡이라도 인디 아티스트를 위한 인프라는 있기 마련이다. 이들을 통해 피지컬 음반을 계약하고, 다시 인맥의 다리를 건너 PR 매니저와 함께 영업 대행사를 찾는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소비자들이 매체를 통해 곡을 들을 수 없다면 말짱 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능력 있는 PR 매니저와 영업사원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쯤 되면 싱글이 완성된다. 그리고 매니저의 헌신을 통해 라디오 선곡 리스트에 싱글을 올린다. 이후에는 톱 40(당시 영국 인기 차트 기준)에 오르기 위한 기다림이 필요하다. 자 이제 내가 할 일은 끝났다. 나머지는 클리셰 범벅으로 만들어진 싱글 자체의 힘에 맡겨야 한다. 이윽고 나의 싱글은 평론가를 비롯한 여러 매체들의 눈에 들어온다. 상업성을 위한 그저 그런 곡이라고 폄하당해도 상관없다. 어느덧 싱글은 날개를 타고 차트 1위에 오른다. 이렇게 히트곡 제조를 위한 여정이 끝난다. 참 쉽죠잉?





  4. 물론 <히트곡 제조법>이 금융 관련 자기계발서 마냥 정말 순수하게 히트곡의 공식을 제시하려는 의도로 쓰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은 대중들의 귀를 휘감는, 예술적이고 의미있다고 간주되는 수많은 곡들이 실제로는 덧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 같다. 좋은 음악을 가려내는 건 극히 주관적이고 인식론적인 문제이다. 즉 수많은 사람들의 공통분모를 만족시킬 수 있는 곡들의 포맷은 한정되어 있으며, 이러한 요소는 상업적 비즈니스와 어우러져 그럴듯한 구조를 가진 히트곡이 양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팝은 항상 황금기라는 저자의 말에 잘 드러나 있다. 우리는 모든 음악이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비치는 10대~20대 초중반을 거친다. "요즘 음악은 들을 게 없어"란 말은 팝의 역사 초창기부터 반복되어 온 상투적인 불만일 뿐이다. 차트 상단의 곡은 항상 듣기 좋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히트곡의 공식이 있다. 현재 밀레니얼이 외면하는 많은 곡들은 10년 뒤 00년대생들의 땀과 눈물을 뽑아내는 노동요가 될 것이다.





  5. 한편으로 <히트곡 제조법>은 그 배경이 영국임에도 불구하고 음악 산업에 종사할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봐야 할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히트곡 제조라는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 제작부터 유통까지의 뮤직 비즈니스의 흐름을 짚어볼 수 있고, 대중음악에 대한 흥미로운 인사이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자인 미묘님의 꼼꼼한 각주는 덤이다. 나는 서울 뮤직 포럼에서 역자님으로부터 직접 이 책에 대한 후기를 들었는데, 히트의 의존도가 유통사의 마케팅에 과도히 의존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아주 공감하는 바이다. 물론 전에서 언급했듯 히트곡의 정의가 바뀌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대중가수의 시대는 끝났고 큐레이션과 음악 시장의 다분화로 인해 '소중'가수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스트리밍 환경을 기반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차트에서 숫자가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히트곡이 종말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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