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 칸트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 리뷰
1. 칸트 윤리학은 다른 윤리학에 비하면 꽤 알려져 있는 편이지만 전공자가 아닌 이상 그 저변까지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 '너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되도록 행위하라'와 같은 언명은 자주 접해보았어도 교양 레벨에서는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소개하지 않는다. 사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칸트의 언명은 단순 명료하지만 이것을 풀어헤쳐 설명하기에는 상당히 까다롭다.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윤리형이상학 정초>라고도 불린다)는 이를 간단히 설명하기 위한 해설서임에도 불구하고 칸트 철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 고전이 도대체 어떤 방식의 논의로부터 위처럼 강력한 도덕률을 이끌어냈는지 간단하게(?) 알아보자.
2. 먼저 칸트는 순수한 도덕 철학을 구현하려면 경험이 아닌, 오로지 이성을 기반으로 절대적 필연성을 가진 법칙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이성적 존재를 대상으로 예외 없이 구속력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심리적, 실용적인 동기는 도덕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단지 인간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행위에 대한 탐구는 도덕 형이상학이 아니다. 이렇게 인트로를 마친 칸트는 3장에 걸쳐서 이론을 전개해 나가는데, 도덕에 대한 일반적인 실례로부터 철학적 인식을 이끌어내고, 최종적으로 여기서 이끌어낸 형이상학의 한계를 지적하는 순서이다.
3. 첫 장에서는 선한 의지와 의무에 대해 다룬다. 일단 선함을 좇는 것이 도덕이 아니겠는가. 선한 의지는 어떤 이익이나 감정을 이유로 행동하는 의지가 아니다. 그것은 오직 의무이기 때문에 하는 의지이다. 따라서 우연히 나의 행위가 선한 의지와 일치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의무이기 때문에 한 것이 아니라면 선한 의지라고 볼 수 없다. 도덕적인 가치는 의무이기 때문에 하는 행위로부터 나온다. 이는 행위의 결과로 도덕성을 평가하는 공리주의와 구별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칸트는 의무에 대한 존경심을 강조한다. 그 존경심이 바로 의무, 도덕 법칙을 따르게 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법칙이 선한 의지의 원칙이 될 수 있을까? 칸트에 따르면 "모든 기대와 충동을 제거하고, 행위 전부가 보편적으로 법칙에 맞아야 한다"라는 원칙만 남는다. 즉, "나의 준칙이 하나의 보편적 법칙이 되어야 한다고 나 또한 바랄 수 있도록 오직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4. 두 번째 장에서는 이성의 명령, 명령법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명령법은 앞선 말 그대로 의지를 강제하는 이성의 명령이다. 그리고 가언적(조건적) 혹은 정언적(무조건적)으로 나뉜다. 전자는 어떤 행위를 해야 이유가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을 이루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명령법이다(ex. 배고픔을 해결해 주기 때문에 밥을 먹어야 한다). 반면 후자는 목적에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필연적으로 생각하는 명령법이다. 정언적 명령법은 행위의 내용과 관계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 자체가 따르는 형식과 관계가 있는데, "준칙을 통해 네가 그것을 동시에 보편적으로 삼으려고 할 수 있는 그런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 단 하나뿐이다. 한편 이것은 선험적 종합 명제로, 분석 명제인 가언적 명령법과 구분되며 조건이 주어지지 않아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도 다르다.
5. 그렇다면 이를 만족하는 준칙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거짓 약속을 하지 말라"가 대표적이다. 만약 "필요할 때마다 거짓 약속을 해도 된다"라는 준칙이 모두가 할 수 있는 보편적 법칙이 되면 약속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칸트는 이성적인 존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객관적 목적으로 '인간', '이성적인 존재'를 도입하고, 절대적 가치를 지닌다고 역설한다. 따라서 다음 명령법은 이렇다. "인간을 너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하지 말고, 목적으로도 사용하도록 행위하라." 이로부터 세 번째 원칙인, 보편적으로 법칙을 주는 이성적인 존재 각각의 의지라는 이념이 나오는데, 이렇게 이성적 존재들이 공동의 법칙을 통해 체계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것을 칸트는 '목적의 나라'라고 부른다. 이는 스스로가 세운 목적뿐만 아니라 목적 자체인 이성적 존재까지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에 따르면 모든 준칙은 보편성이라는 형식, 목적 그 자체라는 내용, 각자가 준 법칙을 바탕으로 한 조화 이 세 가지를 통해 총체성에 도달한다. 법칙은 앞서 언급한 선한 의지를 표현하는 양식이기도 하다.
6. 대망의 마지막 장에서는 도덕 법칙이 구속력을 가지는 조건에 대해 살펴본다. 먼저 위의 보편적 법칙주기가 가능하려면 우리는 자율적인 존재여야 하며, 바꿔 말하면 '자유'가 필요하다. 자유가 분석적으로 도덕 법칙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유로운 의지는 어떻게 가능할까? 칸트는 우리가 자연법칙의 세계인 감성계와 물자체의 세계인 지성계에 동시에 속한 것에 근거한다고 말했다. 전자의 세계에서 우리의 선택과 행위는 자연법칙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 하지만 후자의 세계는 자연법칙과 독립해 있다. 그리고 지성계는 감성계의 법칙을 포함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성에만 근거를 둔 지성계의 법칙을 감성계에 주는 것이 가능하다. 한편 이성은 생각하는 데 있어 자유롭다. 즉 나의 행위는 자유의 이념 아래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렇게 자율성을 갖춘 이성적 존재는 보편적 법칙주기가 가능하다. 그러나 순수이성이 어떻게 그 자신만으로 위와 같은 도덕성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하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고 칸트는 말한다. 우리는 이성이 작용 원인인 것을 알지만 이성의 동기는 파악할 수 없다. 여기에 도덕적 탐구의 한계가 있다.
7. 덕력 하나만 믿고 꾸역꾸역 정리했지만, 비전공자인 탓에 요약한 내용이나 개념 사용이 분명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양해 바란다. 칸트 철학은 오래전부터 익숙했지만 원전을 직접 이해하는 것은 역시나 어려웠다. 하지만 사상가들이 펼치는 아이디어와 논지의 연결고리 하나하나를 머리에 담는 일은 늘 즐겁다. 고전은 "아 그렇구나~"로 퉁쳐왔던 보석 같은 생각들의 원천을 탐구하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고전을 읽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효용에 있다. 실용 서적은 대체로 소프트웨어의 역할을 하지만, 검증된 고전은 나의 사고 자체를 업그레이드하는 하드웨어가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철학과 수학은 머릿속 CPU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