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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크롬 Jul 07. 2020

탑티어 디바 세 명의 세 가지 전략

화사 - '마리아', 선미 - '보라빛 밤', 청하 - 'PLAY' 리뷰


  1. 6월 말과 7월 초에 걸쳐 화사, 선미, 청하가 동시에 컴백했다. 최근 지코와 블랙핑크 등 대형 가수의 컴백 때문에 차트 상단이 전쟁판이 따로 없는데, 이 상황에서 세 명의 탑티어 디바들의 컴백은 삼국지를 방불케한다. 재미있는 건 이 세 명은 커리어와 콘셉트가 매우 다르며, 굳이 교집합을 찾자면 아이돌에서 분리되어 나온 댄스 여가수라는 사실뿐이다. 따라서 그들의 동시 컴백을 경쟁으로 간주하여 누가 좋다 별로다 왈가왈부하는 것보다는, 각자의 이해관계를 토대로 할 일을 다했다고 이해하는 편이 더 흥미롭다. 화사에게는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첫 기반을 구축하는 것, 선미에게는 '가시나'와 '사이렌'의 후광을 피해 한 단계 진화하는 것, 청하에게는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상태에서 노를 젓는 것이 우선순위일 테니 말이다.




뮤비를 보면서 사일런트 힐이 생각났다 (출처 : '마리아' MV)


  2. 먼저 화사는 '멍청이'라는 사기적인 선례가 있기 때문에 솔로 앨범 제작에 있어 소포모어 징크스에 대한 걱정이 컸을 것이다. 따라서 '화사 스타일'의 초기 이미지 구축과 더불어 안정적인 노선을 택했을 것이고, 이번 타이틀 '마리아'는 '멍청이'의 다른 버전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박우상 작곡의 두 곡은 실제로 BPM도 거의 일치할뿐더러 '마리아'의 라틴 풍 변주 구간을 빼면 구조도 거의 같다. 특히 '마리아' 훅 후반부의 "yeah yeah yeah yeah"는 "twit twit twit twit"의 흔적에 가깝다. 두 곡의 중요한 차이점은 곡의 무게감이다. 가벼운 주제와 통통 튀는 목관악기를 강조한 '멍청이'의 경우 철저히 이지리스닝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마리아'는 화사의 세례명을 그대로 차용한 제목처럼, 그녀의 자아와 캐릭터를 곡에 투여하고 스토리텔링을 이어나간다. 특히 "욕을 하도 먹어서 체했어"라고 시작되는 가사는 그녀의 개인적 심정을 반영했다고 보기에 충분하다. 피와 뇌가 등장하는 다소 고어한 뮤직비디오도 '멍청이'와 다른 이미지를 주입하는 데 한몫한다.




  3. 사실 아티스트로서의 첫 기반 구축은 [Maria] EP 전체를 들어야 가능하다. 지코와 김이나가 작곡 작사한 'Kidding'(뭔가 빌리 아일리시 냄새가 난다), DPR LIVE 피쳐링의 'I'm bad too'와 같이 화려한 피쳐링을 봐도 회사가 앨범에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참여는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역량 또한 타 뮤지션들로부터 인정받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장르적으로도 다양성을 반영하려 노력한 것이 보이는데, 'I'm bad too'에서는 보사노바 풍의 간지러운 느낌을 보여주었고, 'LMM'에서는 서정적인 팝 발라드를 깔끔하게 소화했다. 이처럼 [Maria]는 화사가 솔로로서 음악적 역량이 출중하다는 사실을 증명했고, 마마무 멤버들 중에서는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 이르게 했다. 그리고 국내 음원 플랫폼을 비롯하여 아이튠즈 차트에서까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으니, 이 시도는 성공한 셈이다.




보라! 빛! 빰! (출처 : '보라빛 밤' MV)


  4. 선미의 '보라빛 밤'은 '사이렌'과 '날라리'를 함께했던 빅히트의 프로듀서 FRANTS와 함께했다. 아마도 최근의 '누아르'와 '날라리'가 과거의 '가시나', '사이렌'보다는 대중들의 반응에 있어 미적지근했기에 제작 측면에서 어느 정도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선미는 과거 뭄바톤에서 레트로로 나아간 것처럼 다시 새로운 장르로 나아가야 했을까? 확실히 신선함을 주었던 '누아르'와 '날라리'는 세련미와 독특함은 충분했으나 대중들이 매력적이라고 느낄 만큼 직관적이지는 않았다. 더불어 '날라리'는 선미의 복고 시리즈에서 살짝 비껴간 곡이었지만 기대만큼 유효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보라빛 밤'은 이러한 피드백 속에서 나온 대안으로 보인다. '보라빛 밤'은 기존의 레트로를 다시 수용하되, 직관적인 방향(탑 라인)과 포인트(보라! 빛! 밤!)와 같은 요소들을 살려 탄생한 것 같다. 신선하게 느껴지진 않지만 키치함과 흡인력 면에서는 그 윤곽이 확실하다. 더불어 멋들어진 인트로(간주)와 일렉기타 소스는 낭만적인 주제의식에 너무나도 적절한 연출이며, 전반적으로 히트곡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따라서 '보라빛 밤'은 적절한 계절감과 함께 차트에 어느 정도 체류할 것으로 예상되고, 선미는 이번 커리어에 있어 걱정을 한시름 놓았을 것이다.



창모가 뮤비에 나와서 춤췄으면 재밌었을 듯 (출처 : 'PLAY' MV)


  5. 청하는 쉴 틈 없이 달린다. 4월 말 'Stay Tonight'을 발표한 데 이어 한 달 뒤에는 pH-1과의 콜라보레이션('여기 적어줘'),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스프라이트 광고('Be Yourself')까지... 뭐 뮤직비디오도 계속 찍었으니 이미지 소비도 꽤 되었을 것이다. 청하는 작년의 '벌써 12시'와 'Snapping'으로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으니 활동에 박차를 가할 이유가 수도 없이 많다. 즉, 청하는 한창 노를 젓는 중이다. 하지만 퓨처 하우스 기반의 'Stay Tonight' 청하 치고는 의외로 성적이 좋지 않았고, 이번 연도를 명확한 히트곡 하나 없이 마치기는 아쉬웠을 것이다. 'PLAY'는 그에 대한 전략에서 탄생한 곡인 것 같다. 혹시 청하 [Flourishing] EP의 수록곡 'Chica'를 아는지 모르겠다. 이 곡은 당시 핫하던 라틴 팝의 문법과 청하 자신의 꿈에 관한 인상적인 가사로 팬들에게 타이틀 취급을 받았는데(실제로 서브타이틀로서 가요 프로그램 무대가 있었다), 'PLAY'는 이러한 요구를 반영한 'Chica'의 재림에 가깝다. 심지어 VINCENZO를 비롯한 작곡가 그룹도 똑같다! 하지만 'PLAY'에는 다른 장치가 있다. 바로 'REMEDY'에서 호흡을 맞췄던 창모의 피쳐링이다. 그리고 BPM을 무자비하게 올려서 다이나믹함을 강조했으며, "play you on repeat"처럼 흥을 돋우는 애드립도 추가함으로써 여름에 찰떡궁합인 곡으로 만들었다.




  6. 어쨌든 'PLAY'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Chica'를 접하지 못한 대중들은 나름 청하가 신선한 시도를 했다고 느꼈을 것이고, 'Chica'를 아는 사람들은 'PLAY'를 'Chica'의 두 번째 버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도 'Chica'에 대한 호평이 많아서 비슷한 곡이 나올 가능성이 없지 않긴 했다. 그렇다면 'PLAY'는 모두의 염원을 충족시켜줄 만큼 만족스러운 곡인가? 그렇다고 보기에는 아쉬운 면이 존재한다. 일단 전반적인 탑 라인의 흡인력이 'Chica'만 못하다. 즉 곡을 들었을 때 기억에 크게 남는 포인트가 없다. 리드 사운드인 트럼펫 소스도 라틴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하긴 하지만 임팩트가 적은 것이 사실이다. 창모의 찰진 피쳐링도 신선하고 변화구로서의 제 역할을 해냈으나 곡의 판도를 뒤집을만한 정도의 주도권을 갖는 건 아니다. 따라서 'PLAY'는 마냥 성공적인 컴백으로는 볼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 이미지 소비도 심한 와중에 밋밋한 곡을 들고 나오면 청하로서는 더욱 손해이기 때문이다.




  7. 두서없이 세 곡(사실상 앨범 하나와 싱글 두 개)을 리뷰해 봤다. 세 디바가 동시에 컴백하는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이기에, 가독성을 말아먹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써 본다. 우리는 많은 가수들의 성공 여부를 차트와 앨범 성적 기준으로만 본다. 그 방법이 무조건 별로라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아티스트들이 앨범을 준비하면서 겪는 고민에도 충분히 주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앨범의 성공은 항상 이어지지 않고, 실패했을 때는 콘셉트나 음악적 반성을 통해서 다시 부흥하기도 한다. 화사, 선미, 청하는 헤겔의 변증법(정반합)을 반영하듯, 이런저런 의사결정을 통해 각자의 커리어를 써 내려가는 중이다. 저스디스가 말했듯 음악을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로 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변화를 진보로 여기든 퇴보로 여기든, 음악은 계속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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